중종~선조 때 병조판서·좌찬성·판중추부사를 지낸 문신, 호는 삼양재, 시호는 충정 (하동 정씨 동명 인물과 다른 사람)
동명이인 안내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정응두(鄭應斗) — 독립유공자 · 국내항일 · 국내항일

| 생몰 | 1508 ~ 1572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나주 정씨 |
정응두(丁應斗, 1508~1572)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자는 추경(樞卿), 호는 삼양재(三養齋), 시호는 충정(忠靖)입니다. 공안공 정옥형의 아들이고 월헌 정수강의 손자이며, 나주 정씨 14세입니다. 이름이 같은 하동 정씨 독립유공자(1917~)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나주정씨대종회는 24세(1531)에 진사에 합격하고 27세(1534)에 문과에 급제했다고 전하고, 위키백과와 신도비 해설은 1534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고 적습니다. 진사 합격 연도는 대종회(1531)와 신도비 해설(1521)이, 급제 순위는 '장원'과 '제2인'으로 자료마다 다르게 서술됩니다. 선공감 직장으로 출발해 이조좌랑, 좌부승지를 거쳐 병조판서, 평안도관찰사, 좌찬성을 지냈고, 1566년(명종 21) 판중추부사에 올랐습니다.
대종회는 그가 팔도 감사 가운데 여러 곳을 맡았고 명나라에 사은사로 두 차례 다녀왔다고 설명합니다. 높은 벼슬에도 비단옷을 입기 꺼렸고 의식주가 검소했다고 하며, 80이 넘은 조모 김부인을 공무 중에도 틈틈이 찾아 뵈었고, 모친상 때에는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매일 먼 길을 걸어 성묘했다는 효행 일화도 전합니다. 일찍 홀로된 누님에게 재물이 생기면 먼저 드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응두는 네 아들이 모두 이름난 집안의 중심입니다. 맏아들 정윤조는 전첨, 둘째 정윤희는 문과 장원과 강원도관찰사, 셋째 정윤우는 옥당을 거친 강원도관찰사, 넷째 정윤복은 대사헌에 올랐습니다. 부인은 군수 송충세의 딸로 전하며, 1572년(선조 5)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534년 문과 급제를 위키백과는 장원으로, 대종회 '대표인물' 항목은 제2인으로 적습니다. 한편 대종회의 '9대 옥당' 항목에서는 장원으로 급제했다고도 서술해 대종회 자료 안에서도 표기가 갈립니다. 진사 합격 연도 역시 1531년과 1521년으로 나뉩니다.
대종회 자료는 팔도 감사를 지내고 판서에 올랐으면서도 비단옷을 입기 꺼렸다고 전합니다. 이 일화들은 문중 기록에서 온 것으로, 당시 실록 기록과 대조하지는 못했습니다.
정윤조(1528~1586)는 종친부 전첨, 정윤희(1531~1589)는 강원도관찰사, 정윤우(1539~1605)는 강원도관찰사, 정윤복(1544~1592)은 대사헌을 지냈다고 대종회 문원록과 등과자 총람이 정리합니다. 이 가운데 셋은 옥당을 거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응두의 신도비는 1728년 세워져 아버지 정옥형의 신도비와 함께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용인 양지면 제일리의 선영 입구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 지도면 토당리 행주 능곡에 모셨다가 1988년 10월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 선영으로 옮겼다고 대종회가 전합니다. 신도비는 1728년(영조 4)에 세워졌습니다.
네 아들 정윤조·정윤희·정윤우·정윤복이 있으며 손자 정호관·정호선 등이 문과에 올랐습니다.
중종~선조 때 병조판서·좌찬성·판중추부사를 지낸 나주 정씨의 문신으로 호는 삼양재, 시호는 충정입니다.
아닙니다. 하동 정씨 독립유공자 정응두(1917~)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정윤조·정윤희·정윤우·정윤복 네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