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문인으로 문과에 두 번 장원한 문신, 강원도관찰사, 호는 고암 (배우 정윤희와 다른 사람)
| 생몰 | 1531 ~ 1589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나주 정씨 |
정윤희(丁胤禧, 1531~1589)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자는 경석(景錫), 호는 고암(顧庵) 또는 순암(順庵)입니다. 정수강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정옥형, 아버지는 좌찬성 정응두이며 어머니는 군수 송충세의 딸입니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기록되며, 같은 이름의 배우 정윤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552년(명종 7) 생원·진사 양시에 모두 수석으로 합격했고, 1556년 알성 문과에 장원 급제해 홍문관 전적이 되었습니다. 이어 정언, 병조좌랑, 수찬, 지평, 부교리, 이조정랑을 지냈고 1560년에는 사가독서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1566년에는 문과 중시에서도 다시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문과와 중시에서 거듭 장원한 이력은 흔치 않은 기록입니다.
1567년 판결사를 지낸 뒤에는 수령으로 수년간 근무했습니다. 1578년 남양부사로 있을 때 경기감사가 관아의 공역이 과중하다며 파직을 청했으나, 왕의 배려로 면책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후 장단부사와 예조·호조 참의를 지냈고 1588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조정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장에 뛰어났고 특히 사륙문에 능해 한때 홍문관과 예문관의 서책 다수를 찬술했다고 전합니다. 저서로 『고암집』(고암유고)이 있습니다. 아들 정호경·정호성이 1589년 같은 해 진사에 합격했다고 대종회 등과자 총람은 기록합니다.
1552년 생원·진사 양시 수석, 1556년 알성문과 장원, 1566년 문과중시 장원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보에 차례로 나옵니다. 문과와 중시에서 거듭 수석을 차지한 이력입니다.
백과사전은 그를 이황의 문인으로 적습니다. 이황 문하의 구체적인 수학 시기와 교유 관계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78년 남양부사로 있을 때 경기감사가 관아의 공역이 과중하다며 파직을 요청했으나 선조의 배려로 면책에 그쳤다고 합니다. 지방관으로서 부역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넷째 동생 정윤복은 대사헌을 지냈고, 대종회는 윤희의 후손을 고암공파로, 윤복의 후손을 대사헌공파로 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파명 유래는 문중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실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대종회 유적지 표의 기재가 불명확).
아버지 정응두, 형제 정윤조·정윤우·정윤복, 아들 정호경·정호성 등이 있습니다.
이황의 문인으로 문과와 중시에서 두 번 장원한 나주 정씨의 문신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고암집』(고암유고)이 전합니다.
좌찬성을 지낸 정응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