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무신, 호 옥계, 을묘왜변·기미왜변 때 왜구를 막은 순천 경주 정씨의 중심인물
| 생몰 | 1514 ~ 158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경주 정씨 |
정승복은 자가 경윤(景胤), 호가 옥계(玉溪)이며 순천에서 지낸 조선 중기의 무신입니다. 아버지는 정내(鄭鼐), 어머니는 개성 왕씨 왕침의 딸이라고 전합니다. 생년은 위키백과에 1514년, 디지털순천문화대전에는 1520년으로 달리 적혀 있으며 몰년은 1580년으로 같습니다. 1544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1546년 중시에서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선전관·옥구현감·어란진 만호·웅천현감·영덕현령 등을 거쳤고, 1555년 을묘왜변 때 왜구와 교전해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며, 1559년 기미왜변 때는 추자도에서 왜구를 격파하고 왜선 1척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함흥판관으로 있다가 1562년 파직되어 낙향했고, 이후 어모장군 경상도 수군우후를 지냈습니다. 사후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었다가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습니다.
순천시 옥천동에서 지내며 임억령·류희춘과 교유했다고 전하고, 아내는 죽산 안씨·연안 김씨·의령 남씨로 소개됩니다.
디지털순천문화대전은 순천 경주 정씨의 입향조를 정내(1491~1548)로 설명합니다. 정내는 16세기 초 남원에서 순천으로 옮겨 왔는데, 정확한 시기와 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정승복은 그 아들로서 순천에서 세력을 이었고, 후손은 옥천 조씨·양천 허씨 등과 혼인하며 순천의 명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순천시 연향동 명말마을의 옥계서원은 정지년을 주벽으로 정승복과 아들들을 함께 배향합니다. 1868년에 훼철되었다가 1953년 복원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아들 여섯이 전하며 정사익(승평사은의 일원)·정사준·정사횡·정사정·정사립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위로 학자 안방준이 있습니다. 후손은 노송정공파에서 갈라진 옥계공파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