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문신, 호 노송정, 단종 때 낙향한 노송정공파 파조
| 생몰 | 1395 ~ 1462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경주 정씨 |
정지년은 자가 유영(有永), 호가 노송정(老松亭)·망칠(望七)로, 망칠은 스스로 붙인 호입니다. 음서로 관직에 올랐다가 1438년(세종 20) 교도로 있으면서 식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1443년 양현고를 맡았을 때 쌀을 사사로이 쓴 일로 탄핵을 받았으나 용서받았고, 1451년(문종 1)에는 성균관사예를 지냈습니다.
단종이 물러나자 중훈대부 성균관사예였던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경서 연구에 힘썼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1457년(세조 3) 주부로 있으면서 좌익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어, 낙향과 공신 녹훈의 앞뒤 사정은 자료마다 다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후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되고 계림군에 추봉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정렴(鄭廉)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 문서에는 정염(鄭濂)으로도 적혀 표기가 갈립니다.
순천 경주 정씨의 향토 자료는 문헌공파 가운데 정지년(노송정)의 후손이 분파한 것을 노송정파로 설명합니다. 한 종친 카페 자료는 노송정공파가 다시 판서공파·제안공파·참의공파·감사공파로 나뉜다고 정리합니다. 이 가운데 제안공파는 아들 정효상의 시호에서, 참의공파는 아들 정효종의 관직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이지만, 파 이름의 유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순천시 연향동 명말마을의 옥계서원은 정지년을 주벽으로 하여 정승복·정사준·정사횡·정빈·정선 등 6명을 배향한다고 소개됩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53년 복원되었다고 하며, 지역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지년의 아버지는 정렴으로 알려지나 위키백과 문서의 앞부분에는 정염으로도 적혀 표기가 갈립니다. 단종 퇴위 후 낙향했다는 서술과 세조 때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는 기록은 서로 긴장 관계에 있어 한쪽 서술만 따르기 어렵습니다. 아들 효항·효상 형제가 관직에 오른 점을 보면 이 집안은 세조 이후 조정과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로 정효항, 정효상, 정효종(鄭孝終), 정효본(鄭孝本)이 전합니다. 후손은 문헌공파 노송정공파를 이루었고, 노송정공파는 판서공파·제안공파·참의공파·감사공파로 나뉜다고 소개됩니다. 증손자 정내는 순천 경주 정씨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아들이 정승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