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영의정, 탕평책의 중심 인물, 호 귀록(歸鹿)
| 생몰 | 1691 ~ 1752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조현명(趙顯命, 1691~1752)은 풍양 조씨으로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녹옹(鹿翁), 시호는 충효(忠孝)입니다. 좌의정 조문명의 아우이며,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겸설서가 되었습니다. 이후 영조의 총애를 받으며 병조좌랑, 지평, 문학, 부교리, 이조좌랑 등을 지냈고, 외직으로 현감과 용강현령을 거쳤습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는 도순무사 종사관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난을 진압한 공으로 동부승지에 오르는 등 영조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소론에 속하면서도 노론 대신들과 원만한 친분을 유지하고 영조를 적극 보호해 탕평책을 뒷받침했습니다.
이후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경상도·전라도·평안도 관찰사, 이조판서, 어영대장, 수어사, 병조판서 등 문무의 요직을 두루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지냈고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습니다. 마침내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이끌었으며, 붕당 간의 조정과 민생·재정 문제에 힘썼습니다. 문집으로 《귀록집(歸鹿集)》이 전합니다.
난 당시 민심을 수습하고 도순무 종사관으로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소론 인사이면서도 영조의 편에서 탕평책을 뒷받침한 점이 신임의 배경으로 소개됩니다.
관찰사·판서와 함께 어영대장, 수어사 같은 군영의 직책도 맡았습니다.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가 물러난 뒤 다시 좌의정으로 임명되었고, 영돈녕부사로 치사했습니다.
형 조문명, 조카 조재호와 함께 영조 시대 풍양 조씨의 위상을 높인 형제로 평가됩니다.
형 조문명은 좌의정을 지냈고, 조카 조재호는 좌의정, 질녀 효순왕후는 효장세자빈이었습니다. 이들 형제 계통은 조카의 7대손 독립운동가 조동호로 이어집니다.
영조 때 탕평책을 뒷받침하며 영의정에 오른 소론계 대신으로 호는 귀록입니다.
좌의정을 지낸 조문명으로, 문명의 딸이 효순왕후입니다.
《귀록집》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