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豊壤 趙氏) — 조선 후기 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와 영의정 조현명·조인영을 낸 가문으로, 시조 조맹과 남양주 풍양현을 본관으로 하는 세도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조선 후기 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와 영의정 조현명·조인영을 낸 가문으로, 시조 조맹과 남양주 풍양현을 본관으로 하는 세도 가문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풍양 조씨 인구는 약 124,26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조씨라도 본관(풍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일대, 옛 풍양현을 본관으로 하는 조(趙)씨의 한 갈래입니다.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전하는 조맹이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24,262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를 배출하고 헌종 때 외척으로 권세를 누려 '세도 가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뒤에는 학자·재상·무신·독립운동가를 낸 더 긴 역사가 있습니다.
풍양은 백제와 고구려 때 골의노현, 757년 신라 경덕왕 때 황양, 940년(고려 태조 23) 풍양으로 불렸고, 1427년 양주에 속했다가 1980년 남양주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시조 조맹은 원래 '바우'라 불리며 풍양현에서 농사를 짓고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 은둔하다, 영해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그의 지략을 구해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고 '맹'이라는 이름과 조씨 성을 받았다고 합니다. 『풍양조씨세보』는 원래 이름을 '조암'이라 적기도 해 자료마다 다릅니다. 천마산에는 왕건을 만났다는 암굴이 있고 견성암이 이를 지켜 왔다고 전하며, 이 이야기들은 족보와 전승에 근거한 것으로 당대 사료로 확인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조(趙)씨는 본관이 문헌상 200여 곳이지만 시조와 계대를 알 수 있는 것은 한양·풍양·양주·배천·임천·함안 등 20여 본관입니다. 본관마다 시조와 유래가 달라 같은 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2015년 조씨 가운데 풍양 조씨는 약 12.6%입니다. 다른 조씨 본관이 중국에서 건너온 시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풍양 조씨는 성이 없던 토착 인물이 건국의 공으로 성과 이름을 받았다고 설명하는 점이 특징으로 소개됩니다. 양주 조씨 세보가 송나라 황실과 이어 설명하는 계보에 대해서는 풍양·한양 조씨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조 바로 뒤의 세계는 전하지 않아 몇 대가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화사 전직 조지린(趙之藺)을 계조로 하는 전직공계(호군공파·회양공파·금주공파), 문하시중평장사 조신혁(趙臣赫)을 계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상장군 조보(趙寶)를 계조로 하는 상장군공파의 3계 5파로 나뉘고, 계마다 항렬을 따로 씁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은 이 밖에 남원공파 등을 포함해 7개 파로 설명하며, 한산군파·참판공파·검간공종파 같은 이름도 자료에서 보입니다(아래 파별 카드 참고).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이름난 가문이 아니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디지털양주문화대전)는 숙종 대 이후 세도 가문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삼한시귀감》을 엮은 조운흘과, 회양부사를 지내고 부여 임천에 은거해 이방원의 스승이었다고 전하는 회양공 조신(趙愼)이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행주 전투에서 권율을 도운 조경이 선무공신 3등에 책봉되었고, 상주에서는 조정(검간)이 의병 활동을 기록한 《진사일록》을 남겼습니다. 인조~효종 때에는 대동법 확대에 힘쓴 성리학자 조익이 좌의정에 올랐고, 같은 시기 화가 조속은 영모화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영조 때에는 형 조문명과 아우 조현명이 탕평책을 뒷받침하며 각각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고, 문명의 딸은 효장세자의 비 효순왕후가 되었습니다. 노론의 조상경은 신임사화 때 유배되었다 돌아와 판서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아들 조재호는 1762년 사도세자 사건 때 사사되어 가문이 시련을 겪었고, 아들 조엄이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일은 민생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조엄은 정조 즉위 뒤 홍국영의 무고로 유배지에서 병사했으나 1794년 신원되었고, 아들 조진관은 호조판서와 수원부유수를 지냈습니다.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11세에 즉위하자 순원왕후의 아버지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신 안동 김씨가 외척으로 권력을 쥐었습니다. 풍양 조씨는 조만영의 딸이 1819년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빈(신정왕후)으로 간택되면서 외척이 되었고, 1827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하자 풍양 조씨 인사들이 기용되며 안동 김씨에 맞서는 세력으로 떠올랐다고 설명됩니다. 1830년 세자가 요절해 한동안 위축되었다가, 1834년 세자의 아들 헌종이 8세로 즉위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헌종 즉위 초에는 할머니 순원왕후(안동 김씨)가 수렴청정을 했고, 헌종의 외가인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사이에 긴장이 있었습니다. 1841년 헌종이 친정을 하고 조인영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풍양 조씨의 세도가 절정에 이르렀고, 조만영과 조병현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천주교를 탄압한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는데, 조인영과 조병현이 이를 주도했다고 소개됩니다.
1846년 조만영이 세상을 떠난 뒤 힘이 약해졌고,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순원왕후가 철종을 세우고 철종비가 김문근의 딸이 되면서 다시 안동 김씨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조병현은 이때 사사되었고 조인영도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풍양 조씨의 세도는 헌종 재위기를 중심으로 한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설명되며, 평가는 한쪽으로 모이지 않습니다. 외척 정치가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과 민란의 배경이 되었다는 비판과 함께, 풍양 조씨 쪽에서도 금석학(조인영), 《국조보감》 편찬, 재정 건의(조진관), 암행어사로서의 활동(조만영) 같은 면이 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한 가문의 선악 문제라기보다 외척이 정치를 좌우하던 당시 구조 속에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둘째 아들(고종)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즉위시키고 1866년까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카뻘 조성하와 조영하가 흥선군과 조대비를 잇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조영하는 이후 사대당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가 1884년 갑신정변 때 피살되었습니다.
한일강제병합 뒤 흥선대원군의 사위 조정구는 일제의 남작 작위를 거부했다고 전하며, 같은 시기 가문에서 조선귀족이 된 인물도 있어 선택이 갈렸습니다. 독립운동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동호가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현대에는 경제학자이자 초대 민선 서울시장 조순 등이 풍양 조씨 인물로 소개됩니다.
인구는 2015년 124,262명입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1985년 25,894가구 109,434명, 2000년 35,009가구 113,798명으로 늘었고, 양주에는 2000년 95가구 297명이 산 것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세거지로는 경기 남양주(본관)·양주·포천·화성·김포, 강원 양구(동면), 충남 아산·부여·서천, 군산, 경북 상주, 전남 강진, 황해남도 해주·안악 등이 소개됩니다.
시조 묘소·재실의 소재와 풍양궁터 등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종중 업무는 풍양조씨대종회가 맡으며 홈페이지는 http://www.poongyangcho.com입니다. 위키백과 외부 링크에는 풍양 조씨 참판공파 홈페이지와 한산군파 종중도 소개되어 있으나(2011년 보관본), 현재 운영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상주의 호군공파 후손은 '오현파 헌신문중' 등으로 불린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3계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 없어 항렬을 따로 씁니다. 호군공파·회양공파·금주공파는 24세 동(東), 25세 구(九), 26세 남(南), 27세 연(衍), 28세 성(誠), 29세 희(熙), 30세 용(鏞), 31세 신(新), 32세 중(重), 33세 규(揆), 34세 용(用), 35세 원(元), 36세 상(商), 37세 형(衡), 38세 무(茂), 39세 범(範), 40세 강(康), 41세 재(宰), 42세 종(鍾), 43세 주(湊) 순입니다. 평장사공파는 17세 만(萬), 18세 년(年), 19세 희(熙), 20세 재(載), 21세 돈(敦), 22세 묵(默), 23세 병(柄), 24세 기(紀), 25세 강(康), 26세 규(揆) 순으로 이어지고, 상장군공파는 24세 갑(岬), 25세 일(日), 26세 병(昺), 27세 종(宗), 28세 성(晟), 29세 기(玘), 30세 강(慷)입니다. 홀수·짝수 세대에 따라 이름의 첫 글자 또는 끝 글자에 쓰는 방식이며, 실제 사용은 문중마다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파조의 세대와 계보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전직공계,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평장사공파, 상장군공파, 남원공파, 한산군파, 참판공파, 검간공종파
전직공계는 천화사 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계조(系祖)로 하는 계통입니다. 시조 조맹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몇 대가 지났는지 알 수 없으므로, 풍양 조씨는 조지린·조신혁·조보를 각각 기점으로 하는 3계로 나뉘고 계마다 항렬을 따로 씁니다.
전직공계 아래에는 조염휘(趙炎暉)의 아들들에게서 나온 호군공파(조사충)·회양공파(조신)·금주공파(조임)가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이 세 파가 같은 항렬을 쓴다고 하며, 24세 동(東)·25세 구(九)·26세 남(南)·27세 연(衍)·28세 성(誠)·29세 희(熙)·30세 용(鏞)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조병현(秉)→조구하(龜夏)→조동묵(東默)→조선구(善九) 같은 이름의 흐름이 이 계통의 항렬과 맞아떨어집니다.
이 계통에서는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중심이 된 회양공파 한평군파(조만영·조인영 형제)를 비롯해, 상주의 호군공파 후손, 양주·부여·논산 일대의 회양공파 후손이 알려져 있습니다. 파별로 아래 카드를 참고하세요.
호군공파는 조염휘의 아들이자 회양공 조신의 형인 조사충(趙思忠)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직공계에 속합니다. 위키백과의 신(愼)의 가계에 따르면 조사충과 조사공이 조신의 형님으로 적혀 있습니다. 파명은 호군(護軍)이라는 관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나, 조사충의 생몰과 관직의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북 상주 일대에 호군공파 후손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상주박물관에 17건 50점의 고서와 경서를 기증한 한 후손(박사)은 자신을 '풍양조씨 오현파 헌신문중', 상주의 명문가 호군공파 후손으로 소개했고, 기증품은 10대조 조동상(趙東尙, 1659~1723, 용양위부사직)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상주 낙동면에는 임진왜란 의병장 조정(검간)이 세운 것으로 전하는 양진당(보물 제1568호)·오작당·청간정이 있고 풍양조씨 검간공종파의 학문 공간이었다고 하나, 이 종파가 호군공파인지 다른 파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종중 홈페이지와 연락처는 대종회를 통해 확인하세요.
회양공파는 조신(趙愼)을 파조로 합니다. 본명이 사렴(思廉)인 조신은 공민왕 때 회양부사를 지냈고, 신돈이 집권하자 물러나 부여 임천에 은거하며 이름을 신(愼)으로 고쳤으며, 어린 시절 이방원(태종)의 스승이었다고 전합니다. 박팽년·유성원 같은 학자를 길렀다고도 합니다. 부인은 고성 이씨 이암의 딸이고 아들 조안평·조개평을 두었다고 소개됩니다. 후손들은 부여·논산 일대에 세거했습니다.
조신의 묘소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9호이고, 그를 제사 지내는 덕림병사(德林丙舍)는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양주에는 회양공파 묘역이 있어, 2018년 11월 그곳에서 출토된 지석·복식·석물과 집안에서 대대로 간직한 고문서·고서 등 499점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고, 2022년 4월 87점이 추가로 위탁되어 2023년 1월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5대에 걸친 사대부 가문의 자료로, 조병현의 초상(헌종이 제목을 씀)과 조득영, 그리고 정조 때 예조에서 일하며 연행 일기를 남긴 조환 관련 자료가 소개됩니다.
풍양 조씨 가운데 많은 고관을 배출한 파로 꼽힙니다. 이 파에서 갈라진 한평군파는 헌종 때 세도 정치를 이끈 가계로, 헌종의 외조부 조만영(趙萬永)과 그 아우인 영의정 조인영(趙寅永)이 이 계통입니다. 이들의 아버지 조진관, 할아버지 조엄(고구마 전래), 증조부 조상경도 같은 직계입니다. 조만영의 딸이 신정왕후(조대비)입니다. 풍양 조씨 인물 대부분이 이 계통에서 소개되므로 우리 집안이 이 파인지 족보로 먼저 확인하세요.
금주공파는 조염휘의 아들이자 회양공 조신의 아우인 조임(趙𥙛, 초명 조덕린)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직공계에 속합니다. 파명의 유래와 조임의 관직, 후손의 세거지, 종중 정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회양공파·호군공파와 같은 항렬(24세 동·25세 구·26세 남 …)을 쓰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대표 후손이나 문중 홈페이지는 풍양조씨대종회를 통해 확인하세요.
평장사공파는 고려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계조로 하는 계통으로, 전직공계와는 촌수를 가릴 수 없어 항렬을 따로 씁니다. 항렬은 17세 만(萬), 18세 년(年), 19세 희(熙), 20세 재(載), 21세 돈(敦), 22세 묵(默), 23세 병(柄), 24세 기(紀), 25세 강(康), 26세 규(揆)로 이어집니다.
경기도 화성 지역의 풍양 조씨가 이 파에 속하며, 성리학자 포저 조익(趙翼, 1579~1655)과 아들 조복양, 손자 조지겸(趙持謙) 3대가 화성의 명고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서원 소재지는 자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조익은 대동법 확대에 힘쓴 좌의정으로, 임진왜란 때 행주 전투에서 공을 세운 조경은 조익의 종조부입니다. 조지겸의 5대손 조만원 이후 화성의 이 집안을 '들목 조씨'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조익의 묘소는 충남 대흥 동화산 아래로 전하고, 조익의 《포저유서》와 조복양의 《송곡문집》 판각은 충남 예산에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익의 후손이 속한 이 계통 외에 '조정기를 파조로 하는 가계'를 소개하는 자료도 있으나 파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상장군공파는 고려 때 상장군을 지낸 조보(趙寶)를 계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이 파는 한때 강진(康津)을 관향으로 삼고 조보의 8세손으로 세종 때 문신인 조주(趙注)를 시조로 하였습니다.
정조 때 회양공파 후손 조홍진(趙弘鎭)이 강진현감으로 부임해 호적을 살핀 끝에 조보가 조맹의 후손임을 확인하고, 예조에 통보한 뒤 임금의 재가를 받아 본관을 풍양으로 되돌렸다고 합니다(환본). 항렬은 24세 갑(岬), 25세 일(日), 26세 병(昺), 27세 종(宗), 28세 성(晟), 29세 기(玘), 30세 강(慷)으로 이어지며 다른 계와 구별해 씁니다.
전남 강진군 일대에 이 파의 후손이 세거한다고 소개되나, 파의 대표 후손과 종중 정보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원공파는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이 풍양 조씨의 7개 파를 설명하며 호군공파와 함께 이름을 든 파입니다. 전직공파·평장공파 아래의 7개 파 가운데 하나라고만 소개되며, 파조와 생몰,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파에 해당하는 집안은 풍양조씨대종회나 족보로 어느 계(系)에 속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항렬을 대조하세요.
한산군파는 위키백과 풍양 조씨 문서의 외부 링크에 '풍양 조씨 한산군파 종중'으로 소개된 파입니다. 파조의 이름과 시대,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족보나 종중에 문의해 주세요.
참판공파는 위키백과 풍양 조씨 문서의 외부 링크에 '풍양 조씨 참판공파 홈페이지'(2011년 보관본)로 소개된 파입니다. 파조와 세계,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며 홈페이지의 현재 운영 여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검간공종파는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의병 활동을 한 검간 조정(趙靖, 1555~1636)을 중심으로 하는 종중입니다. 문화재청 자료는 상주 낙동면의 청간정을 '풍양조씨 검간공종파 자손들의 학문의 장소'라고 소개합니다.
조정이 세운 것으로 전하는 양진당(보물 제1568호)·오작당과 문집 《검간선생문집》 목판(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이 이 종중과 연결됩니다. 3계 5파 가운데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조맹(풍양 조씨 시조, 고려 개국공신 전승), 조운흘(고려 말 문신, 《삼한시귀감》), 조정(임진왜란 상주 의병장, 검간), 조경(행주 전투 선무공신 3등), 조익(대동법 확대, 좌의정), 조속(영모화로 이름난 화가), 조문명(탕평파 영수, 좌의정), 조현명(조선 영의정), 조상경(노론 대신, 병조판서), 조재호(좌의정, 사도세자 사건으로 사사), 조엄(통신사, 고구마 전래), 조진관(호조판서, 수원부유수), 조득영(병조판서·대사헌, 김달순 탄핵), 조만영(풍은부원군, 헌종 외할아버지), 조인영(조선 영의정), 조병현(판서, 풍양 조씨 세도), 신정왕후(조대비, 고종 즉위 수렴청정), 효순왕후(효장세자의 비, 정조 양어머니), 조영하(사대당 외척, 갑신정변 때 피살), 조성하(조대비 조카, 좌참찬), 조정구(대원군의 사위, 남작 작위 거부), 조동호(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운동가), 조순(경제학자, 초대 민선 서울시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풍양 조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조맹(시조 전승), 조운흘(고려 말 문신), 조경(행주 전투 선무공신), 조정(상주 의병장), 조익(대동법·좌의정), 조속(화가).
조문명, 조현명, 조상경, 조재호, 조엄, 조진관, 왕실 인척 효순왕후.
조득영, 조만영, 조인영, 조병현, 신정왕후, 조성하, 조영하.
조정구, 조동호, 조순. 위키백과 풍양 조씨 문서에는 이 밖에 조병건·조동윤·조경하·조대연·조남수·조광희·조남풍·조중연·조남조 등이 올라 있으나, 이 서비스에 별도 문서는 아직 없습니다.
조광조는 한양 조씨, 조식은 창녕 조씨로 풍양 조씨가 아닙니다. 같은 '조'씨라도 본관마다 시조와 유래가 다르고 혼인 제한도 현종 때까지 본관이 달라도 적용되었으므로(현재도 동성끼리 혼인을 꺼리는 관례), 본관을 족보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양조씨대종회 www.poongyangcho.com. 파마다 항렬이 다르므로 '파'를 먼저 확인한 뒤 항렬표를 대조하세요. 파계가 불분명한 집안은 대종회·파 종중에 문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문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디지털양주문화대전, 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를 정리한 것으로 확인하지 못한 사항은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조맹~조현명·조만영·조인영·신정왕후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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