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언론인, 조선건국동맹 참여, 호 유정, 건국훈장 독립장

| 생몰 | 1892 ~ 1954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풍양 조씨 |
조동호(趙東祜, 1892~1954)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 호는 유정(榴亭)입니다. 영조 때 탕평파 조문명·조현명 형제의 사촌 조철명의 8대손이며 조재호의 방계 후손으로 소개됩니다. 1908년 경성측량학교에 입학해 측량기사로 일했고, 여운형과 알게 되어 평생 동지가 되었습니다.
1914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난징 금릉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에서 구국일보 기자로 일했습니다. 1918년 신한청년당 창당에 참여했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제헌의원으로 참여해 국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창간에도 관여했습니다.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고 합니다.
1923년 귀국해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했고,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해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아 왔습니다. 1928년 체포되어 4년형을 받았고, 출옥 뒤 조선중앙일보 편집고문으로 일했습니다. 1944년 조선건국동맹 결성에 참여했고 1945년 8월 체포되었다가 해방 직후 석방되어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습니다. 해방 후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했고, 1954년 고향에서 병사했습니다. 2005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난징 금릉대학을 졸업한 뒤 상하이에서 기자로 일하며 동제사에 이사로 참여했고,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한글 활자를 제작해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발행에 쓰였다고 소개됩니다.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에서 일하며 여운형과 활동했고, 1944년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에서 내무부와 군사위원회를 맡았습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면서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2005년 8월 30일 경기도 이천에서 이장)
아들로 조윤구, 조준구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내고 조선건국동맹 등에서 여운형과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입니다.
2005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본관이 풍양이며, 조문명·조현명 형제의 사촌 조철명의 8대손으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