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소론 대신, 효순왕후의 오빠, 사도세자를 구하려다 사사됨
| 생몰 | 1702 ~ 1762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조재호(趙載浩, 1702~176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이며 자는 경대, 호는 손재입니다.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아들이자 영의정 조현명의 조카이며, 효장세자빈 효순왕후의 오빠입니다. 1729년 진사시에 합격했고, 1739년 우의정 송인명의 추천으로 세자시강원에 들어갔으며, 1744년 홍산현감으로 있으면서 춘당대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승지, 이조참의, 충청도·강원도·경상도·평안도 관찰사, 개성유수,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삼촌 조현명이 너무 빠른 승진을 여러 번 말렸다고 전하며, 1754년 우의정이 되어 여러 번 사직을 청했으나 영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색은 소론이었지만 소론 안의 완론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등 당내에서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1759년 영조의 새 왕비 간택 건의에 반대하다 임천에 유배된 일이 있었고, 사도세자와 비밀리에 연락한 일이 빌미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1762년 사도세자의 일을 구하려 서울로 올라왔으나 그의 발언이 역모로 몰려 함경도 단천에 안치된 뒤 종성으로 옮겨져 사사되었습니다. 1775년 딸이 신문고를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하자 영조가 복권시켰습니다.
1744년 문과 급제 뒤 한 해에도 여러 직책을 옮기는 빠른 승진을 했습니다. 삼촌 조현명은 조정 안팎의 시선을 의식해 이를 여러 차례 만류했다고 합니다.
1762년 사도세자가 화를 입자 구명에 나섰다가 사사되었습니다. 1775년 딸의 호소로 복권되었고, 연루되었던 남경용 등은 정조 때인 1790년에야 복권되었습니다.
딸이 신문고를 울려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한 일이 알려져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조동호는 그의 7대 방조(傍祖)가 되는 집안으로 소개됩니다.
영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소론계 대신으로, 사도세자를 구하려다 1762년 사사되었습니다.
효순왕후의 친오빠입니다.
1775년 딸이 신문고를 울려 억울함을 호소하자 영조가 복권시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