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문신, 강릉부사, 호 석간·서하옹, 《삼한시귀감》 편찬
| 생몰 | 1332 ~ 1404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풍양 조씨 |
조운흘(趙云仡, 1332~1404)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입니다. 호는 석간(石磵) 또는 서하옹이며, 이인복의 문하에서 배워 공민왕 6년(1357) 문과에 급제해 청직에 올랐으나 크게 현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목록은 그를 풍양 조씨의 이른 시기 인물로 올려 둡니다.
고려 말의 어지러운 정치를 보고 서해도 방백을 끝으로 물러났으며, 아미타불을 외며 스스로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 일컫고 벼슬을 내놓고 낙향했다고 합니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눈병이 나았다며 사평원주를 자청해 고을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만년에는 강릉부사로 재직하다 73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저서로 고려 시대 시를 모은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이 알려져 있고, 문집 《석간집》은 현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357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현달하지 못했고, 서해도 방백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인복의 문하라는 점이 알려져 있습니다.
고조부 조진규, 증조부 조정, 조부 조숙령, 아버지 조건으로 이어지며, 부인은 상주 김씨 김득배의 딸이라고 합니다. 아우 조운개의 외손자가 무신 성승이라고 소개됩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고려 멸망 뒤 강릉부사로 재직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는 풍양 조씨 인물입니다.
《삼한시귀감》이 알려져 있으며, 《석간집》은 현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