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즉위를 결정하고 수렴청정한 대왕대비, '조대비'
| 생몰 | 1808 ~ 1890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신정왕후 조씨는 조선 후기의 왕비로, 풍은부원군 조만영과 은진 송씨의 장녀로 1808년(순조 8) 12월 6일 한성 두모방의 사저에서 태어났습니다. 1819년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와 혼례를 올려 세자빈이 되었고 1827년 원손(헌종)을 낳았습니다. 1830년 남편이 요절해 청상과부가 되었으며, 1834년 아들 헌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왕대비가 되었습니다. 흔히 '조대비(趙大妃)'로 불립니다.
헌종 대에는 시가인 안동 김씨와 친정인 풍양 조씨 사이의 세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순원왕후가 철종을 세웠고, 1857년 순원왕후가 승하한 뒤 신정왕후가 대왕대비가 되었습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둘째 아들(고종)을 익종(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즉위시키고 1866년까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수렴청정 기간에 서얼의 관직 진출 제한을 푸는 전교를 내리는 등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뒷받침했고, 1866년 수렴청정을 거둔 뒤 대원군에게 전권을 맡겼다고 합니다. 1890년 4월 17일 경복궁 흥복전에서 승하했으며, 조선의 왕비 가운데 가장 장수(81세)하고 대왕대비로 가장 오래(약 32년) 재위했다고 소개됩니다. 1899년 남편이 문조로 추존되며 신정익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1819년 세자빈이 되었고, 1830년 남편 효명세자가 요절하자 아들 헌종이 왕세손이 되었습니다. 1834년 헌종이 즉위하며 남편은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신정왕후는 왕대비가 되었습니다.
흥선군이 신정왕후를 자주 찾아 친분을 쌓고 아들 중 한 명을 익종의 양자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동의를 얻었다고 전합니다. 고종이 열한 살이라 수렴청정을 했고, 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847년 40세 생일 잔치를 그린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보물 제732호입니다. 능은 동구릉의 수릉입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수릉(綏陵)에 남편 문조와 합장
아들은 헌종이며, 철종 사후 흥선군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고종으로 즉위시켰습니다. 증조부는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 아버지는 조만영, 작은아버지는 영의정 조인영입니다. 어머니는 송준길의 7대손이라고 소개됩니다.
효명세자의 세자빈이자 헌종의 어머니이며, 1863년 고종을 즉위시키고 수렴청정한 '조대비'입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둘째 아들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했습니다. 흥선군과의 약속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수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