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 趙翼

대동법 확대에 힘쓴 성리학자, 좌의정, 호 포저, 시호 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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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79 ~ 1655
시대조선 중기~후기
본관풍양 조씨

생애 약력

조익(趙翼, 1579~1655)은 조선 중기~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본관은 풍양 조씨입니다. 자는 비경, 호는 포저·존재, 시호는 문효입니다. 장현광과 윤근수에게 배웠고, 어머니가 찬성 윤근수의 딸이었습니다. 1602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정자가 되었으나, 1611년 김굉필·조광조 등의 문묘 배향을 주장하다 고산도찰방으로 좌천되었습니다.

인조반정 뒤 이조좌랑 등으로 복귀해 한성부우윤, 개성유수, 예조판서, 대사헌, 공조판서 등을 지냈고 1648년 좌참찬으로 다시 조정에 나가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듭 맡았습니다. 이원익을 도와 대동법을 확대하고 관리하는 데 적극 참여했고, 뒤에는 김육과 함께 시행 확대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예조판서로 종묘를 강화도로 옮기고 인조를 호종하려 했으나 피신시킨 아버지를 찾느라 남한산성 호종 기회를 놓쳐 유배되었다가 그해 12월 석방되었습니다.

성리학과 예학에 밝고 경학·병법·복술에도 뛰어났으며 《곤지록》《중용주해》《대학주해》《서경천설》을 지어 효종에게 바쳤는데, 주자의 장구를 크게 고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장유·최명길·이시백과 평생 우정을 나눠 '사우(四友)'로 불렸습니다. 문집 《포저집》이 전하며, 아들 조복양, 손자 조지겸 등이 이어졌습니다.

대동법과 현실 개혁

조익은 이원익, 김육 등과 함께 대동법을 확대·정착하는 데 이름을 남겼습니다. 인조반정 직후에는 강원·충청·전라도에도 대동법을 실시하자고 건의했다고 전합니다.

학문과 저서

저서로 《포저집》 35권 18책, 《주서요류》(1642), 《서경천설》 등이 알려져 있고, 《역상개략》은 제목만 전합니다. 포저유서와 아들 조복양의 송곡문집 판각은 충남 예산에 보관되어 도 문화유산으로 소개됩니다.

가계와 후손

고조부 조현범, 증조부 조안국, 조부 조간, 아버지 조영중으로 이어집니다. 종조부 조경은 행주 전투의 공신입니다. 손자 조지겸은 소론 계열의 문신이었습니다.

묘소

충남 대흥 동화산 아래에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광주(廣州)의 명고서원, 개성의 숭양서원, 신창의 도산서원 등에 제향되었습니다.

후손

아들 조몽양·조진양·조복양·조내양·조현양을 두었다고 하며, 조복양(송곡)의 아들 조지겸이 관찰사에 올랐습니다. 이 계통은 평장사공파로 소개됩니다.

조익 자주 묻는 질문

조익은 어떤 사람인가요?

인조~효종 때 활약한 좌의정이자 성리학자로, 대동법 확대에 힘썼습니다. 호는 포저입니다.

조익의 문집은 무엇인가요?

《포저집》 35권이 전하며 《주서요류》 등 저서도 있습니다.

사우(四友)란 누구를 말하나요?

조익과 장유, 최명길, 이시백이 평생 우정을 나눠 사우로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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