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문신, 호 영호, 시호 문익

| 생몰 | 1719 ~ 1777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조엄(趙曮, 1719~177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이며 자는 명서, 호는 영호(永湖), 시호는 문익입니다. 이조판서 조상경의 아들로 원주 지정면 간현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173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2년 정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 수찬, 교리, 동래부사, 충청도 암행어사 등을 지냈습니다.
1758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해 시노비 1만여 명의 노비공을 견감하고 한전의 세 부담을 줄였으며 조창 설치를 건의했습니다.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오면서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보관법과 재배법까지 알렸고, 제주도와 동래에서 처음 재배했다고 합니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조저(趙藷)'라 불렀고, '고구마'라는 말은 그의 《해사일기》에 일본인이 '고귀위마'라 부른다고 적은 데서 유래했다고 전합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뒤 홍국영의 무고로 파직되었고, 평안도관찰사 시절의 일로 위원에 유배되었다가 아들 조진관의 호소로 김해로 옮겨졌으나 이듬해 병사했습니다. 1794년 신원되고 1814년 좌찬성에 추증되었습니다. 손자 조만영과 조인영, 증손녀 신정왕후로 이어지는 풍양 조씨 외척 가문의 선대입니다.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해 이듬해 돌아올 때 가져왔고, 보관법과 재배법도 함께 익혔다고 합니다. 구황작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주에서는 '조저'라는 이름이 쓰였습니다.
경상도관찰사 때 노비공 견감, 한전 세율 조정, 조창 설치 건의로 세곡 수송의 민폐를 덜었다고 합니다. 1760년 창원·진주·밀양 3곳에 조창 증설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조 즉위 후 홍국영의 무고로 유배지에서 병사했으나 1794년 신원되었습니다. 원주 지정면의 묘역은 2000년 강원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의 원주 조엄 묘역(강원도 기념물 제76호, 2000년 지정)
아들 조진관, 손자 조만영·조인영, 증손녀 신정왕후로 이어집니다. 부인은 풍산 홍씨 홍현보의 딸로 혜경궁 홍씨의 고모라고 합니다.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들여와 보급한 인물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에 있으며 강원도 기념물 제76호입니다.
조엄은 신정왕후의 증조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