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의 아버지이자 헌종의 외할아버지, 풍은부원군, 풍양 조씨 세도의 기틀을 닦은 인물

| 생몰 | 1776 ~ 1846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이며 자는 윤경, 호는 석애(石崖), 시호는 충경입니다. 이조판서 조진관의 아들이자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의 손자이고, 아우가 영의정 조인영입니다. 1813년 문과에 급제해 검열, 지평, 정언 등을 지냈고 1816년 전라도 암행어사로 나가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1819년 장녀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빈(훗날 신정왕후)으로 간택되면서 국구(國舅)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이조·호조·예조·형조판서와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를 거쳤고 어영대장·훈련대장 등 군영 대장직도 맡았다고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1827년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면서 풍양 조씨 세도의 기반이 놓였다고 설명합니다.
1834년 외손자 헌종이 즉위하자 풍은부원군에 봉해졌고, 헌종 시대에 풍양 조씨의 중추 인물로서 안동 김씨와 세도를 다투었습니다. 1845년 궤장을 하사받고 영돈녕부사가 되었으며 1846년 별세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서예에도 능했다고 합니다. 평가는 갈립니다. 외척으로서 권력의 틀을 만든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안동 김씨와의 정권 다툼에 치우쳐 민생 문제를 소홀히 해 삼정의 문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딸이 세자빈이 된 1819년 이후 중앙 요직을 두루 거쳤고, 효명세자의 대리청정기(1827~1830)에 풍양 조씨 인사들이 등용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됩니다. 1830년 세자가 요절하면서 한동안 세력이 위축되었으나 1834년 헌종 즉위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헌종이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순원왕후(안동 김씨)가 수렴청정을 했고, 헌종의 외가인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사이에 긴장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1839년 기해박해를 계기로 풍양 조씨가 세력을 굳혔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서예가로서의 면모와 암행어사 시절의 명성이 소개되는 한편, 세도의 폐단을 지적하는 비판적 시각도 함께 전합니다. 한 사람을 선악으로 단정하기보다 당시 외척 정치의 구조 속에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딸이 효명세자빈 신정왕후, 외손자가 헌종입니다. 아우 조인영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의 두 중심으로 꼽힙니다. 아들 조병구(趙秉龜, 조병귀로도 읽음)는 헌종의 외숙으로 세도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소개됩니다.
신정왕후의 아버지이자 헌종의 외할아버지로, 풍양 조씨 세도의 기반을 닦은 인물입니다.
형제로, 조만영이 형이고 조인영이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헌종 즉위 후 조만영에게 내려진 봉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