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하 趙寧夏

신정왕후의 친정 조카뻘 외척, 고종 친정 선포를 이끈 사대당의 중심, 갑신정변 때 피살, 자 기삼, 호 혜인

조영하 초상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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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45 ~ 1884
시대조선 후기
본관풍양 조씨

생애 약력

조영하(趙寧夏, 1845~1884)는 조선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이며 자는 기삼, 호는 혜인(惠人)입니다. 신정왕후의 친정 5촌 조카이며 6촌 형 조성하와 동갑입니다. 조인영 가계로 입양되어 양조부는 조인영, 양부는 조만영의 차자 조병기입니다. 1863년 정시 문과에 급제해 규장각 대교를 지냈습니다.

조성하와 함께 철종 때 불우했던 흥선대원군을 만나 교분을 쌓고, 흥선대원군과 조대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전합니다. 조대비의 총애로 1865년 대사성으로 특진했습니다. 그러나 1873년 호조판서로 있을 때 민승호 등 민씨 일족, 최익현 등과 손잡고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해 실각을 이끄는 데 앞장섰고, 고종의 친정이 선포되자 포도대장·훈련대장·금위대장 등을 지냈습니다.

1880년 이조판서, 이후 병조판서 등을 지내며 청나라와 가까운 사대당의 실력자가 되었고,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는 청에 들어가 병사를 요청하고 대원군이 청으로 끌려가는 일에 관여했다고 소개됩니다. 개항 초기 서양 열강과의 수호 조약 체결 실무에도 관여했다고 전합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지중추부사로서 김옥균 등에게 살해되었습니다(고종실록).

흥선대원군과 조대비의 가교

1863년 고종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조성하와 조영하는 흥선군과 조대비를 잇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고종 초에 조대비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대원군 실각 이후

1873년 고종의 친정 선포로 대원군이 물러난 뒤 군영 대장과 판서를 지냈습니다. 임오군란 때의 행적은 평가가 갈리며, 이후 사대당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갑신정변

1884년 갑신정변 때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직후 김옥균 등이 보낸 이들에게 민태호, 한규직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고 고종실록은 전합니다.

후손

아들 조동윤이 있으며 조동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귀족이 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조영하 자주 묻는 질문

조영하는 누구인가요?

신정왕후의 조카뻘 외척으로, 고종 초 흥선대원군 실각을 이끌고 사대당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어떻게 죽었나요?

1884년 갑신정변 때 김옥균 일파에게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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