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순조 때 병조판서·대사헌을 지낸 문신, 호 일곡, 시호 문충, 조병현의 아버지
| 생몰 | 1762 ~ 1824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풍양 조씨 |
조득영(趙得永, 1762~182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 조씨이며 자는 덕여, 호는 일곡(日谷), 시호는 문충입니다. 1789년(정조 13)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경기도사와 홍문관수찬을 지냈고, 순조 즉위 뒤 예조참의, 부산첨사, 이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했습니다. 조만영·조인영 형제의 8촌 형으로 소개됩니다.
1806년 형조참판 재직 중 우의정 김달순을 연석에서 탄핵해 처벌받게 한 공으로 이조참판에 오르고 병조판서에 특진되었습니다. 1808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서 병사 이광익과 의주부윤 윤익렬의 비위를 논죄했으나 암행어사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보고가 부정확했음이 밝혀지며 복직했습니다.
1812년 척신 박종경의 비위를 지적하고 정사를 어지럽힌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진도 금갑도로 유배되었고, 6년 뒤 향리로 옮겨졌다가 1819년 대신과 삼사의 청원으로 풀려났습니다. 말년에는 우참찬·대사헌·대호군 등을 지냈고 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안동 김씨·반남 박씨 등 외척과 맞선 풍양 조씨가 세력을 얻어 가는 과정의 한 장면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두 사건은 순조 초 외척 사이의 권력 다툼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정치적 경쟁의 일면으로, 다른 시각에서는 공론에 따른 탄핵으로 평가되므로 자료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버지 조진명, 어머니는 덕수 이씨, 부인은 연안 이씨 이문원의 딸입니다. 아들 조병현·조병황·조병록·조병석을 두었습니다.
아들 조병현이 병조판서·홍문관대제학에 올랐고, 손자 조구하·조봉하, 증손 조선구, 현손 조정구까지 이어진다고 소개됩니다.
정조 때 장원 급제한 문신으로 순조 때 병조판서·대사헌을 지냈고 김달순 탄핵, 박종경 상소로 알려졌습니다.
8촌 형제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