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주씨 동국 시조, 송나라 한림학사
| 생몰 | 1194 ~ 1260 |
| 시대 | 고려 |
| 본관 | 신안 주씨 |
주잠(朱潛, 1194~1260)은 신안 주씨의 동국 시조입니다. 호는 청계로 전하며, 『고종실록』에 실린 주석면의 상소에는 '청미공(淸渼公)'으로 나옵니다. 상소에 따르면 그는 주희의 둘째 아들 주야(朱埜)의 손자이자 주거(朱鉅)의 셋째 아들로, 주희의 증손입니다.
그는 송나라에서 한림학사·비서각 직학사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몽골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 그리고 섭공제·조창·진조순·주세현·유응규·두행수·도성하 등 문인 7학사와 함께 바다를 건너 나주(금성)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화순 능성에 숨어 살았으며, 원나라의 수색을 피하려고 이름을 주적덕(朱積德)으로 바꿨다고도 전합니다.
망명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고종실록 상소는 고려 강종 원년 임신년(1212), 남도일보와 디지털시흥·김해문화대전은 1224년(고종 11)으로 적습니다. 은거지도 진안 용담(신아일보)과 진안 주천면 신안촌(남도일보)으로 갈립니다. 그는 진안 주천서원에 배향되었고, 화순 능주 주자묘 경내의 옛 회덕사에서도 모셔졌습니다.
족보 전승에 따르면 주잠은 송나라 말 몽골의 침입을 피해 아들 주여경과 문인 7학사를 데리고 나주(금성)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화순 능성에 숨어 살았고, 원나라가 송의 유민을 찾자 이름을 주적덕으로 바꿨다고 전합니다. 이 집안이 오랫동안 능성 주씨로 불린 것도 이 정착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진안 주천서원(전북 문화재자료 제142호)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신안 주씨 전체가 그를 동국 시조로 모십니다. 아들 주여경이 그와 함께 고려로 왔다고 전합니다.
고종실록에 실린 주석면의 상소에 따르면 주잠은 주희의 둘째 아들 주야의 손자이자 주거의 셋째 아들로, 주희의 증손입니다.
고종실록 상소는 1212년(고려 강종 원년), 남도일보와 향토문화전자대전 일부 항목은 1224년(고종 11)으로 적어 자료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