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의병 · 대통령장(1962)
| 생몰 | 1908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여흥 민씨 |
1907년 군대 해산 후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강원·충청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다. 원주 진위대 정교(무관 계급)로 근무하던 중 그해 8월 5일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임박하자 약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봉기하여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 경찰을 습격하였다.
이후 제천·죽산·여주 등지에서 유격전을 벌였으며, 지방민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부대는 수천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이인영과 함께 관동창의대장으로서 100여 회의 전투를 치렀다.
1908년 2월 29일 전투 중 포로가 되어 강림면으로 호송되던 중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어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