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민씨(驪興 閔氏) — 여흥을 본관으로 하는 민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여흥을 본관으로 하는 민씨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여흥 민씨 인구는 약 159,52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민씨라도 본관(여흥)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상서공파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를 지낸 민영모(閔令謨)의 맏아들 민식(閔湜)을 파조로 합니다. 민식은 1167년(의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형부상서에 이르렀습니다.
민식의 증손 민지(閔漬)는 1266년 장원급제하고 충숙왕 때 첨의정승에 올라 여흥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수는 민식-민지 계열이 민공규 계열보다 많았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공목공파·역암공파 등 여러 지파가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정의공파는 민영모의 둘째 아들로 11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평장사를 지낸 민공규(閔公珪)를 파조로 합니다. 민공규의 증손 민종유(閔宗儒)는 찬성사로 치사하고 복흥군에 봉해졌고, 그 아들 민적(閔頔)은 진현관 대제학을 지냈습니다.
민적의 손자 민제(閔霽)의 딸이 태종비 원경왕후가 되었으며, 조선의 민씨 왕비 4명이 모두 이 계열에서 나왔습니다. 그 영향으로 당상관 배출에서는 상서공파 계열보다 크게 앞섰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삼방파는 정의공파 민적(閔頔)의 12세손 민광훈(閔光勳)을 파조로 하는 지파입니다. 민광훈의 셋째 아들 민유중(閔維重)의 딸이 숙종비 인현왕후가 되어 민유중은 여양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형 민정중(閔鼎重)은 좌의정, 민정중의 아들 민진장(閔鎭長)은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후(閔鎭厚)는 좌참찬, 아우 민진원(閔鎭遠)은 영조 때 노론의 영수로 좌의정을 지냈습니다. 민진후의 현손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고종비 명성황후가 되면서 여흥 민씨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원경왕후, 명성황후, 민영환, 민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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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여흥 민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민칭도 → 원경왕후 · 민유중 → 인현왕후·명성황후·순명효황후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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