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계몽운동 · 대한민국장(1962)

| 생몰 | 1861 ~ 1905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여흥 민씨 |
시종무관장을 지낸 대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을 남기고 자결·순국하였습니다. 자결 당시 남긴 유서에는 망국의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동포에게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으로 서울의 충정로가 그의 시호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그가 자결한 방의 마룻바닥에서 대나무가 돋아나 그 잎이 44개로 향년과 같았다는 이른바 '혈죽(血竹)' 일화가 전해집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