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문씨 시조 (남평백)
| 시대 | 고려 초 (전승) |
| 본관 | 남평 문씨 |
문다성(文多省)은 남평 문씨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이다. 설화에 따르면 나주 남평의 장자못 가 큰 바위(문암, 文巖) 위 석함에서 나온 아이를 군주가 거두어 길렀는데, 글과 무예에 두루 밝아 문(文)을 성으로 삼고 다성(多省)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무신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벽상공신에 오르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런 연유로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설화의 연대(백제 개로왕 대)와 개국공신 기록이 맞지 않아 대종회에서는 후삼국시대 인물로 정정하였다.
『남평 문씨 족보』에 실린 전승에 따르면, 옛 백제 미동부리현의 장자못 가 바위 위 돌상자 안에서 갓난아이가 발견되었고, 이 아이가 자라 문(文)을 성으로, 다성(多省)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족보인 1731년 『신해보』에 시조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 전설이 실려 있다고 소개됩니다. 이 바위는 지금 나주시 남평읍의 문바위(문암)로 전해집니다.
설화는 472년(백제 개로왕 18년)을 탄생 해로 말하고 98세까지 살았다고 전하지만, 고려 개국공신·남평백이라는 족보 기록과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이에 대종회는 후삼국시대 인물로 정정했습니다. 그가 『고려사』 등 사료에 나오지 않아 설화적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족보는 시호를 무성(武成)으로 적습니다. 전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나주 남평읍 문바위 옆에는 1993년 단을 마련해 매년 3월 20일 제를 올리고, 장연서원에 배향해 9월 중정일 유림이 제향한다고 소개됩니다. 위키백과는 문바위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2호로 안내합니다. 일정은 달라질 수 있으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