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문씨(南平 文氏) — 목화를 전한 문익점을 배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문씨의 대표 본관으로 전해집니다.
목화를 전한 문익점을 배출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문씨의 대표 본관으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남평 문씨 인구는 약 445,946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문씨라도 본관(남평)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며, 2015년 인구조사에서 445,946명으로 집계된 큰 성씨입니다. 한국 문씨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의 집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설화에 따르면 옛 백제 미동부리현(지금의 남평읍) 장자못 가의 큰 바위 위 돌상자에서 아기로 발견되어 길러졌고, 글과 무예에 밝아 문(文)을 성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바위가 남평읍의 문바위(문암)로 전해집니다. 족보는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한벽상공신·남평백에 봉해지고 시호를 무성(武成)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설화는 472년(백제 개로왕 18년)을 탄생 해로 말하지만 고려 개국공신이라는 기록과 어긋나, 대종회는 후삼국시대 인물로 정정했다고 합니다. 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므로 사실과는 구분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문다성과 그 뒤의 세계는 분명하지 않아, 1731년(영조 7) 간행된 최초의 족보 『신해보』는 문익(文翼)을 기세조로 삼았고 이후 대동보도 문익을 1세로 이어 왔다고 합니다. 문익의 아들 문공인·문공원·문가관·문공유 네 형제가 현달하면서 가문이 번성했다고 전합니다. 이 중 문공인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에, 문공유는 형부·병부상서와 판삼사사에 올랐습니다. 문공유의 아들 문극겸은 무신정권기에 중서시랑평장사까지 오른 청백리로 이름이 높습니다.
문극겸의 두 아들 문후식과 문유필 대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후식의 후손은 충혜공파·감천군파·남제공파와, 문익점을 파조로 하는 충선공파 및 그 아래의 헌납공파·순질공파·의안공파·시중공파·성숙공파 등 8개 파로, 유필의 후손은 충익공파·판도판서공파 2개 파로 정리되어 모두 10개 파로 설명됩니다. 유필계는 예전에는 순평부원군파로 묶였으나 1995년 대동보에서 둘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파별 카드를 참고하세요.
고려 말에는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고향 산청에서 재배에 성공해 의생활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38명이라는 집계가 소개되는데, 같은 자료는 다른 큰 성씨에 비하면 가세가 크게 흥한 시기는 아니었다고 서술합니다. 한편 무신정권기 문극겸의 딸이 이의방의 동생 이린에게 시집갔고 이린이 이성계의 선조로 기록되어, 문극겸을 조선 태조의 외가 쪽 먼 조상으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학자 문일평, 대한국민의회·임시정부에 참여한 문창범, 독립유공 건국포장을 받은 의사 문창모 등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해방 후에는 목사·시인으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문익환이 있고, 현대에는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 같은 본관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계보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충선공파, 충혜공파, 순평부원군파, 감천군파, 남제공파, 헌납공파, 순질공파, 의안공파, 시중공파, 성숙공파, 충익공파, 판도판서공파
충선공파는 고려 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을 파조로 합니다. 문익점은 1360년 문과에 급제하고 1363년 원나라 사행에 서장관으로 다녀왔으며, 좌사의대부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습니다. 사후 강성군(江城君)에 추봉되고 충선(忠宣)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들 문중용·문중성·문중실·문중진·문중계를 파조로 하는 헌납공파·순질공파·의안공파·시중공파·성숙공파 등이 이 계통에서 갈라졌으며, 산청 강성현 연고에 따라 강성 문씨로 불리기도 합니다.
충혜공파는 문익겸(文益謙)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문중 자료에서는 문익겸을 충선공 문익점의 형으로 전하며, 문익점과 같은 대(代)에서 갈라진 형제 계열로 봅니다.
순평부원군파는 문유필(文惟弼, ?~1228)을 파조로 합니다. 문유필은 고려 무신정권기의 문신 충숙공 문극겸의 아들로, 1221년 수사공 좌복야, 1222년 지문하성사를 거쳐 1227년 참지정사 판예부사에 올랐고, 1228년 재직 중 세상을 떠나자 조회가 사흘간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후손은 1995년 대동보에서 파주·전주 일대에 세거하는 문달한(文達漢)의 충익공파와, 합천 일대에 세거하는 문근(文瑾)의 판도판서공파로 나뉘어 정리되었으며, 판도판서공파는 장연 문씨로도 불립니다. 이 계열은 대동항렬과 다른 항렬을 쓴다고 하여, 모든 파가 같은 뿌리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감천군파는 9세 문구(文龜)를 파조로 하는 파로 소개됩니다(대수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남평 문씨와 시조를 같이하는 감천 문씨는 이 감천군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해지며, 시조가 다른 별개의 감천 문씨와는 구별됩니다.
문극겸의 아들 문후식의 후손으로 정리되는 8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남제공파는 5세 문착을 파조로 하는 파로 소개됩니다. 문극겸의 아들 문후식의 후손으로 정리되는 8개 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조의 한자와 세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으니 문중 족보로 확인하세요.
헌납공파는 문익점의 장남 문중용에서 비롯한 충선공파 아래의 소파로 전해집니다. 문익점의 다섯 아들을 장남부터 차례로 헌납공파·순질공파·의안공파·시중공파·성숙공파와 연결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나무위키 인물 목록에는 이 파 출신으로 문창래가 올라 있습니다.
순질공파는 문익점의 둘째 아들 문중성에서 비롯한 충선공파 아래의 소파로 전해집니다. 한자 표기와 파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표류하여 류큐·필리핀 등을 돌아온 문순득(1777~1847)이 이 파 인물로 소개되는 자료가 있으나, 본관과 파는 다른 자료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의안공파는 문익점의 셋째 아들 문중실에서 비롯한 충선공파 아래의 소파로 전해집니다. 부산 지역 자료는 14세 문평(의안공)을 동래 입향조로 소개합니다. 문평은 1406년(태종 6) 종질 문가학이 연루된 모반 사건으로 화를 입어 단성을 떠나 사천에 머물렀고, 1440년(세종 22) 차남 문우원과 함께 동래 초읍동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부산 반여·금사·철마 등에 후손이 살며,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헌법재판관 문형배를 같은 의안공파 계통으로 보도했으나 세부 계보는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시중공파는 문익점의 넷째 아들 문중진에서 비롯한 충선공파 아래의 소파로 전해집니다. 파조의 관직과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성숙공파는 문익점의 막내 문중계에서 비롯한 충선공파 아래의 소파로 전해집니다. 파조의 시호와 한자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충익공파는 문달한(文達漢)을 파조로 하며, 순평부원군 문유필의 후손으로 1995년 대동보에서 독립된 파입니다. 경기 파주와 전북 전주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고 소개됩니다. 문달한의 세대는 자료에 따라 9세로 적히기도 합니다.
판도판서공파는 문근(文瑾)을 파조로 하며, 순평부원군 문유필의 후손으로 1995년 대동보에서 독립된 파입니다. 경남 합천 일대에 세거하며 장연 문씨로도 불립니다. 문근의 세대는 자료에 따라 8세 등으로 적힙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문다성(남평 문씨 시조), 문익(중시조 1세), 문공인·문공유, 문극겸, 문익점(목화 전래), 문일평, 문창범, 문익환, 문재인(제19대 대통령)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남평 문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전남 나주 남평을 본관으로 하며, 한국 문씨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시조는 설화상 나주 남평의 바위(문암, 文巖) 석함에서 나왔다는 문다성(文多省)으로, 고려 태조를 도운 무신으로 삼중대광·벽상공신에 오르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문다성부터 세대가 멀어, 실제 계보는 고려 숙종 때의 문익(文翼)을 중시조 1세로 하여 잇습니다. 문익의 세 아들 문공인·문공원·문공유 대에 가세가 크게 일어나, 문공유는 남평현 개국자, 문공인은 평장사, 문공원은 배향공신이 되었습니다. 뒷날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이 이 가문에서 나왔고, 현대에는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 있다.
시조 연대는 대종회에서 후삼국시대로 정정한 바 있습니다.
나주시 남평읍의 문바위(문암)는 시조 설화와 이어진 바위로, 위키백과는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2호라고 소개합니다. 1993년 바위 옆에 단을 마련해 매년 3월 20일 제를 올리고, 장연서원에 시조를 배향해 음력 9월 중정일에 유림이 제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행사 일정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대종회나 나주시에 확인하세요.
경남 산청군에는 문익점과 관련된 유적이 여럿 있습니다. 단성면의 목면시배유지는 문익점이 장인 정천익과 처음 목화를 재배한 곳으로 소개되는 국가 사적이며, 전시관과 목화밭이 있고 매년 10월 무렵 목화축제가 열린다고 보도됩니다(2019년부터 전시관 무료). 신안면 신안리에는 문익점을 모신 도천서원과 그의 묘소(경상남도 기념물 제66호), 신도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가 있습니다. 서원과 시배유지는 서로 다른 곳이니 방문 전에 위치를 확인하세요.
씨앗을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태조실록』은 씨앗 십여 개를 주머니에 담아 왔다고 하고, 남효온의 「목면기」는 세 개였다고 전합니다.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생몰년도 1329~1398 또는 1331~1400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본관지인 나주 남평읍 외에 전남의 화순·장흥·영암·보성·담양, 전북의 남원·임실·순창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고 소개됩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문익점의 18세손 문경호가 터를 잡았다고 전하는 마을로, 1995년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수봉정사·광거당·인수문고 등이 있습니다(입향 시기와 건물 연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부산에서는 14세 문평(의안공)이 1440년 동래 초읍동에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보며, 2000년 통계청 집계 기준 부산 거주 36,790명(11,154가구)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부산 기장 철마면 웅천리의 아홉산숲도 남평 문씨 집성촌으로 소개됩니다. 이 밖에 서울 강동·송파, 경기 양주·의정부, 경남 거창·합천·진주 등 전국에 흩어져 있고, 해방 전 함경·평안 지역에도 많았다고 합니다.
종중 업무는 남평문씨대종회가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 홈페이지와 연락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역 모임으로는 남평문씨부산종친회(부산 문중을 성안·사상·초읍·철마·금사·거벌·반여 등으로 나눠 소개)와 다음 카페의 남평문씨은평종친회가 확인됩니다. 소속 파와 지역 종친회는 문중에 문의하세요.
대동항렬은 문익을 1세로 세어, 홀수 세대는 이름의 첫 글자, 짝수 세대는 끝 글자를 오행에 맞춰 정한다고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30세는 호(鎬)·현(鉉)·흠(欽), 31세는 제(濟)·승(承)·홍(鴻), 32세는 식(植)·모(模)·상(相), 33세는 희(熙)·형(炯)·병(炳), 34세는 주(周)·기(基)·균(均), 35세는 종(鍾)·용(鎔)·련(鍊), 36세는 영(泳)·수(洙)·흡(洽), 37세는 동(東)·학(學)·환(桓), 38세는 노(魯)·섭(燮)·훈(勳), 39세는 재(在)·시(時)·규(圭), 40세는 선(銑)·일(鎰)·석(錫), 41세는 택(澤)·태(泰)·해(海), 42세는 표(杓)·근(根)·목(穆)입니다. 순평군(유필계) 파와 판도판서공파는 별도의 항렬을 쓰며, 지역과 문중에 따라 실제 사용은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445,946명입니다. 1985년·2000년 집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탐라(제주)의 토착 문씨 왕자 가문 등 별개의 문씨 계통도 있으니, 본관이 남평인지 족보로 확인하세요.
문다성·문익~문극겸·삼우당 문익점남평 문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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