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숙종 때 문신 (남평 문씨 중시조 1세)
| 시대 | 고려 |
| 본관 | 남평 문씨 |
문익(文翼)은 고려 숙종 때의 문신으로, 남평 문씨가 중시조 1세로 삼는 인물이다. 금석문에 등장하는 가문 최초의 실존 인물로 꼽힌다.
아버지는 2군 6위 소속의 무관이었고, 문익은 중서문하성의 관직을 거쳐 문관으로 나아갔다. 그의 세 아들 문공인·문공원·문공유 대에 이르러 가세가 크게 일어나, 문공유는 남평현 개국자, 문공인은 평장사, 문공원은 배향공신이 되었다.
문다성 이후의 세계가 분명하지 않아, 1731년(영조 7) 간행된 최초의 족보 『신해보』는 문익을 기세조로 삼았고, 이후의 대동보도 문익을 1세로 세어 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대동항렬도 문익을 1세로 하여 세대를 셉니다. 한편 일부 자료는 문익이 우산기상시를 지냈다고 적습니다.
문익의 아들로는 문공인·문공원·문가관·문공유 네 형제가 전합니다. 문공인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에, 문공유는 형부·병부상서와 판삼사사에 올랐고, 문공원은 배향공신으로 전합니다. 공유의 아들이 청백리로 이름난 문극겸이며, 극겸의 두 아들 후식과 유필 대에서 남평 문씨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네 아들 문공인·문공원·문가관·문공유 대에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