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 차별에 맞서 강변칠우를 자처했던 인물, 박충간의 아들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상주 박씨 |
박치의(朴致毅)는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인물로 본관은 상주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강변칠우(江邊七友)의 한 사람이라 소개하며, 아버지는 박충간이라고 적습니다. 생몰년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박충간은 정여립 사건을 고변해 평난공신 1등에 올랐던 고관이었지만, 아들 박치의는 서자(庶子)였기에 벼슬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조선 사회는 서얼차대(庶孽差待), 곧 첩의 자식에게 과거 응시와 관직 등용을 제한하는 제도를 두고 있었습니다. 박치의는 이에 불만을 품고 동생 박치인과 함께 심우영·박응서·서양갑·이경준·김평손 등 명문가 서자들과 어울렸습니다. 이들은 강변칠우 또는 죽림칠우를 자처하며 여주의 북한강 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 사귀었습니다.
1612년(광해군 4) 이들은 문경 새재(조령)에서 은을 파는 상인을 죽이고 은 600~700냥을 약탈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듬해 일당이 모두 체포되었으나 박치의만 홀로 도주해 행방을 감추었다고 기록됩니다. 이 사건에서 붙잡힌 박응서 등의 진술이 이어서 계축옥사(1613)로 번져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둘러싼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고 일반적으로 설명됩니다.
이처럼 박치의의 이야기는 가문의 영예를 전하는 일화는 아니지만, 신분제 아래에서 재능을 펼칠 길이 막힌 서얼의 좌절과 그것이 낳은 사회적 비극을 보여 주는 사례로 역사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의 조부를 박세훈이라고 적으나 박충간 항목은 박충간의 아버지를 박세후로 적어 두 항목이 어긋나므로, 계통은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서얼차대에 불만을 품은 명문가 서자 일곱 명이 여주 북한강 가의 무륜정에서 시주로 어울린 모임입니다.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묘소는 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