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후 朴世煦

조광조의 문인으로 광양현감·밀양부사·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문신, 호는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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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94 ~ 1550
시대조선 전기
본관상주 박씨

생애 약력

박세후(朴世煦, 1494~1550)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주입니다. 자는 중온(仲溫), 호는 인재(認齋) 또는 눌재(訥齋)입니다. 증조부는 박안의, 조부는 박미창, 아버지는 군자감부정 박사화이고 어머니는 신복담의 딸입니다. 박세희의 아우이며 조광조의 문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들로 선조 때 평난공신에 오른 박충간이 있습니다.

1516년(중종 11) 진사가 되었고 1519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지만, 같은 해 기묘사화로 사림이 쓸려 나가자 한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후 성균관 전적에 등용되었고 1522년 박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파직되었다가, 1527년 다시 박사로 복직해 사헌부 감찰로 승진했습니다.

1528년 광양현감이 되어 해상 방위에 힘썼고, 공자 사당이 허술한 것을 보고 터를 닦아 묘우를 옮겨 지었습니다. 1533년 수부원외랑을 거쳐 이조좌랑에 올랐으나 권신 김안로의 청혼을 거절한 일로 미움을 샀고, 1536년 장악원 첨정으로 있다가 간관의 탄핵을 받아 문외출송되었습니다. 그 뒤 복직해 홍문관 교리, 성균관 사예, 종부시·봉상시 첨정을 지냈고, 1540년 밀양부사로 특별히 뽑혀 치적을 올렸습니다.

1544년 좌필선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고, 1545년(명종 즉위년) 장례원 판결사로서 하절사(賀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549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관동을 잘 다스렸으나, 이기의 인척인 양구현감 신난수의 비행을 적발해 보고했다가 도리어 고문을 받고 임금의 특명으로 풀려나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듬해인 155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부 자료는 사후 좌의정 증직을 적기도 하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양현감 시절

1528년 광양현감으로 해상 방위에 힘쓰고 허술한 공자 사당을 새로 옮겨 지었습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아들 박충간이 평난공신에 올랐고, 손자로 박치의·박치인이 전합니다.

박세후 자주 묻는 질문

박세후의 아들은 누구인가요?

정여립 사건을 고변한 공으로 평난공신에 오른 박충간입니다.

박세후의 스승은 누구인가요?

조광조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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