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훈 朴世勳

효성으로 '주동의 효아'라 불린 학자, 호는 송촌(송촌공파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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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88 ~ 1553
시대조선 전기
본관상주 박씨

생애 약력

박세훈(朴世勳, 1488~1553)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상주입니다. 자는 훈지(勳之), 호는 송촌(松村)이며, 아버지는 군자감부정 박사화, 어머니는 현감 신복담의 딸입니다. 박세희·박세후와 형제 사이로, 세 사람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나 이름을 남겼습니다. 상주 박씨 송촌공파의 파조로 모셔집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해 '주동의 효아(鑄洞孝兒)'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문장으로는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고 오직 부모를 정성껏 봉양했습니다. 1504년(연산군 10)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남양에 있는 무덤 아래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를 하며 3년 동안 죽만 먹고 지냈는데, 고을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어머니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해 사마시에 합격했고, 이후에는 학문에만 열중했습니다. 1519년(중종 14) 문명이 널리 알려지자 조광조 등이 현량과와 같은 별과에 천거했으나,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사림이 큰 화를 입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형 박세희가 같은 사화로 강계에서 숨진 점을 생각하면, 형제가 같은 시대의 풍파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셈입니다.

그 뒤 조정에서 제용감 첨정에 임용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1553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효행과 은거로 이름을 남긴 선비로 기억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강변칠우의 한 사람인 박치의의 조부를 박세훈이라고 적는데, 같은 사전의 박충간 항목은 박충간의 아버지를 박세후라고 하여 두 항목이 서로 어긋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주동의 효아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해 '주동의 효아'로 불렸고, 아버지의 상에 3년 시묘를 했습니다.

묘소

남양의 아버지 묘 아래에서 시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본인의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송촌공파의 파조로 모셔집니다.

박세훈 자주 묻는 질문

박세훈의 호는 무엇인가요?

송촌(松村)입니다. 송촌공파의 파조로 모셔집니다.

형제는 누구인가요?

박세희와 박세후가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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