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보》를 펴낸 학자·병자호란 의병(호 동계)

| 생몰 | 1595 ~ 1664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진원 박씨 |
박춘장(朴春長, 1595~1664)은 진원 박씨의 학자로 자는 언승(彦承), 호는 동계(東溪)입니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군공으로 현감에 제수되었다고 전하는 박근효이고 어머니는 함평 이씨 부교위 이유겸의 딸입니다. 일찍 양친을 잃어 서른 살에 배움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맏형 박춘수에게 처음 배웠으며, 서른여섯 살에는 안방준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합니다.
1636년 병자호란에 안방준의 창의에 참가했으나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했고, 이때 감사 원두표에게 8조목의 글 〈상감사원평군원공두표서〉를 올려 우국충정을 드러냈습니다. 1645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652년(효종 3) 시폐를 바로잡는 5조목의 〈의상응지소〉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존군토적과 존화양이의 사상을 일관되게 지녔다고 평가됩니다.
1657년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진원 박씨 족보인 《정유보》를 간행했습니다. 이 족보는 시조 박진문의 행적을 상세히 남기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그 이전에도 족보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1662년 대기근 때에는 민정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백성 구제에 앞장섰으며, 만년에는 고향 용산 아래에 정사를 지어 후학을 길렀습니다. 문집 《동계유고》가 있고 육현사에 배향되었으며 박진형·박사헌이 대표적인 제자입니다. 나무위키는 지리지 《산양지》를 지었다고 적지만 이는 공식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657년 간행된 《정유보》는 지금 전하는 가장 오래된 진원 박씨 족보로, 박춘장이 펴냈습니다. 시조의 세계(世系)를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이전부터 족보가 있었음을 보여 주어, 이후 1737년 《정사보》 중수 등으로 이어지는 족보 편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박춘장은 병자호란 때 감사 원두표에게 글을 올렸고, 1652년에는 시폐를 바로잡는 5조목의 상소를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662년 대기근 때에는 지방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알려 백성 구제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육현사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1657년 박춘장이 간행한 현존 가장 오래된 진원 박씨 족보입니다.
《동계유고》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