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전의 맏아들·전라좌의병 참모관(호 만포)

| 생몰 | 1550 ~ 160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진원 박씨 |
박근효(朴根孝, 1550~1607)는 진원 박씨 장계파의 선비로 자는 무백(務伯)·입지(立之), 호는 만포(晩圃)이며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왕세자 사부를 지낸 박광전이고 동생은 박근제입니다. 1591년 진사시에 입격했고 성혼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의 참모관으로 출전했고, 개령·성주 일대를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군량 공급을 맡았으며, 부장 장윤이 성이 함락될 때 전사하자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고 전합니다. 나라에서 군공에 따라 내린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일부 자료는 군공으로 현감이 제수되었다고 적어 서술이 다릅니다.
정유재란 때에도 아버지·동생과 함께 의병 활동을 이어가 '삼부자창의'로 불렸습니다. 사후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습니다. 아들 박춘수·박춘장은 병자호란 때 안방준의 의병에 나섰고, 동생 박근제의 아들 박춘호와 박춘장의 아들 박진형이 함께해 한 집안에서 '칠현거의'가 이루어졌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박광전이 병으로 군을 이끌기 어려워지자 의병장으로 임계영을 추대했고, 박근효는 참모관으로 군의 살림과 작전을 도왔습니다. 이 부대는 남원에서 진주, 성주 방면으로 움직이며 개령과 성주를 되찾는 일에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그는 군량 보급을 맡았습니다. 성이 함락될 때 전사한 장윤을 떠올리며 함께 죽지 못했음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 일화는 그가 끝까지 명예를 중하게 여겼음을 보여 줍니다. 전쟁이 끝난 뒤 군공으로 내려진 관직에도 나아가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박광전과 두 아들 박근효·박근제가 함께 의병에 참전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후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