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광해군·인조 때 사헌부·사간원에서 활동한 문신, 가도의 모문룡을 접반한 감군접반사
| 생몰 | 156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고령 박씨 |
박경업(朴慶業, 156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입니다. 초명은 박승업,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입니다. 시인 박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인량, 아버지는 박무입니다.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아 미상으로 둡니다.
1594년(선조 2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사헌부 지평·장령, 사간원 정언 등을 지냈습니다. 1599년 공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사헌 홍여순을 탄핵해 파면시켰으나, 홍여순이 다시 등용되자 사헌부 집의 김신국, 사간원 사간 송일 등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했습니다.
1613년(광해군 5) 강릉부사에 임명되었으나 강원도 도시(道試)에 부정이 있었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고, 이듬해 장령에 서임되었다가 동래부사로 나갔지만 무고에 얽혀 탄핵이 이어졌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일시 유배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28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철산 앞 가도(椵島)에 진을 치고 후금을 치라고 강요하자 감군접반사로 파견되었고, 뒤에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했습니다.
사헌부 지평·장령, 사간원 정언 같은 언관직을 오가며 탄핵과 간쟁을 이어 갔습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 탄핵은 곧 그 자신의 삭탈로 되돌아왔고, 이는 선조 후반 정국의 다툼 속에서 언관이 겪기 쉬운 부침을 보여 줍니다.
강릉부사와 동래부사 등 외직에서도 탄핵을 받았으나 다시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1628년 모문룡이 가도에 진을 치고 조선에 후금을 칠 것을 강요하던 때 감군접반사로 파견된 일이 《인조실록》에 전하며, 이후 동지중추부사에 올랐습니다. 향토사 자료에는 이 밖의 행적이 더 전하지 않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공개 자료에서 후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박무, 할아버지는 박인량으로 박은-박인량-박무-박경업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