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사헌부감찰·영흥판관, 이조참판 증직
| 생몰 | 1390 ~ 1452 |
| 시대 | 조선 초기(태종~문종) |
| 본관 | 강릉 박씨 |
박중신(1390~1452)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숙립(叔立)입니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봉선대부 서운부정 박지계(朴之桂), 아버지는 통정대부 단천군사 박자검(朴自儉)이며, 어머니는 밀성김씨 김지(金祗)의 딸입니다. 박중경·박중실 두 형제가 있었고, 먼저 강릉김씨 김예의 딸과 혼인했다가 사별한 뒤 광주이씨 이초의 딸을 재취로 맞았다고 합니다.
1417년(태종 17) 사마시에 합격해 이천·정선·단천·양양의 교도를 지냈고,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했습니다. 이후 원주교수, 흡곡현령, 의금부도사, 성균관주부, 사헌부감찰, 영흥판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는 여묘 생활을 했고, 어머니가 89세로 연로하자 고향 강릉으로 돌아와 극진히 봉양했다고 전합니다.
아들 박시원·박시창·박시형·박시행·박시문 오형제가 모두 이름을 날려 가문의 기틀이 되었고, 박중신은 훗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습니다. 강릉시 운정동 모선재(慕先齋)에 제향되며, 모선재는 강릉박씨 판관공 종중이 소유한 재실입니다. 묘소는 경포 서쪽에 있다고 전합니다.
박중신의 아들 박시원(무과, 승지), 박시창(무과, 승지·북병사), 박시형(동부승지), 박시행(대사성), 박시문(평해군수)이 모두 관직에 나아갔다고 모선재 항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박시형·박시행·박시문 항목을 따로 두었습니다.
운정동 모선재 주변에는 승지공·북병사공·단천공·생원공 등 종중 인물의 재실이 모여 있어 '재궁'이라는 지명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박중신의 문과급제교지도 별도 항목으로 소개됩니다.
경포(鏡浦) 서쪽에 있다고 합니다.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