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기묘사림, 병조좌랑, 강릉 12향현, 호 사휴당·사지
| 생몰 | 1470 ~ 1552 |
| 시대 | 조선 중기(성종~명종) |
| 본관 | 강릉 박씨 |
박공달(1470~1552)은 자가 대관(大觀), 호가 강호·사지(四止)·사휴당(四休堂)인 조선 중기의 문신입니다. 아버지는 박시행, 어머니는 영양남씨 진사 남과의 딸이며 김진석의 딸과 혼인했습니다. 1495년(연산군 1) 26세에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수신과 독서에 전념하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1516년(중종 11) 금강산을 유람하던 김정(충암)이 그를 만나 인품에 감탄하고 중종에게 적극 추천했다고 합니다. 1519년 현량과에 천거되어 홍문관 저작과 병조좌랑을 지냈으나 같은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박수량과 경학을 논하며 사천 해안 가까운 쌍한정(雙閒亭)을 자주 찾았습니다.
1545년 승문원교검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568년(선조 1) 영의정 이준경 등의 주창으로 천거과에 추천되었으나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강릉 12향현의 한 사람으로 향현사에 제향되며, 묘소는 운정동 경호 산기슭에 있다고 합니다. 호 '사지'는 소나무 그늘, 사립문 집, 텃밭 채소, 자식 자라는 모습을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1519년 현량과에 천거되어 홍문관 저작과 병조좌랑을 지냈으나 기묘사화로 곧 물러났습니다. 사림의 추천자 김정과의 인연은 하평마을 인물 항목에도 소개됩니다.
쌍한정은 1520년 박수량과 박공달이 세운 정자로, 두 사람이 함께 한가로이 소요한 데서 이름이 유래합니다. 운곡 송한필의 기문을 비롯해 현판 12개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박수량과는 당숙·조카 또는 숙질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박시행, 할아버지 박중신입니다. 함께 쌍한정에서 지낸 박수량과도 가까웠습니다.
강릉시 운정동 경호(鏡湖) 산기슭에 있다고 합니다.
벼슬을 버리고 강릉으로 돌아와 박수량과 학문을 논하며 지냈고, 이후 여러 차례 천거에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