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장악원정(홍문관교리·대사성, 이조판서 증직)
| 생몰 | 미상 |
| 시대 | 조선 초기(예종~성종) |
| 본관 | 강릉 박씨 |
박시행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박중신의 아들입니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에 따르면 어머니는 영양남씨 남매의 딸이며 형으로 박시원·박시창·박시형이 있습니다. 1468년(예종 즉위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이듬해 추장시에 올라 장악원정(掌樂院正)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모선재 항목은 홍문관 교리, 승정원 동부승지, 부제학, 대사성을 지내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고 적어, 두 자료의 관직 서술이 약간 다릅니다.
전하는 일화로는 젊은 시절 강릉 기생 옥반주(玉盤珠)와 정을 나누었는데, 강릉에 머물던 감사가 그녀에게 수청을 들게 하자 말을 달려 감사 앞에 나섰다고 합니다. 감사가 붙잡아 오게 한 뒤 '제(諸)·여(餘)·여(如)' 세 글자를 운으로 시를 짓게 하자 옥반주를 소반 위의 진주에 비유한 시를 지었고, 감사가 뜻을 헤아려 칭찬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전승이므로 사실 기록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박시행의 아들이 박공달로, 박공달은 기묘사림으로 강릉 12향현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박시행은 강릉박씨 판관공 종중의 모선재에 제향되며, 그의 묘비는 별도 항목으로 소개됩니다. 생년과 몰년, 묘소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박시행의 아들 박공달(1470~1552)은 1519년 현량과에 천거된 박공달입니다.
아버지는 박중신이며, 형제 가운데 박시형과 박시문이 문과에 올랐습니다.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묘비 항목은 따로 있음).
장악원정으로 기록되며, 모선재 항목에는 대사성·이조판서 증직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