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정치가,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 호 동암

| 생몰 | 1886 ~ 1962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달성 서씨 |
서상일(徐相日, 1886년 7월 9일~1962년 4월 18일)은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 정치가로 호는 동암(東菴), 본관은 달성이며 대구도호부 출신입니다. 대구부 서상면 남산동(현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서봉기와 이영천의 6남 2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09년 교남교육회와 달성친목회 등에 가입해 계몽활동에 참여했고, 같은 해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항일 단체 대동청년당을 조직했습니다.
1916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 권총 사건에 연루되었고, 3·1운동 직후에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파리강화회담 독립청원서 전달에 참여했습니다. 한때 만주에 망명했다가 1920년 초 귀국해 대구청년회에 가입했고, 1923년부터 동아일보 대구지국을 운영했으며 조양무진회사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송진우·장덕수 등과 한국민주당을 창당해 총무가 되었고, 국민대회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비상국민회의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을 거쳐 1947년 미군정청 소방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1948년 5·10 총선거에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헌법기초위원이 되었고 6월 2일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제헌헌법 기초에 참여했습니다. 제헌국회 말기에는 내각책임제를 주장했고 이후 자유당 독재에 반대하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60년 사회대중당을 창당해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병으로 의정 활동이 어려웠고 5·16 이후 의원직을 잃었으며, 통일대중당을 창당했으나 196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한편 1939년과 1941년 신문에 친일 성격의 집회 참석자로 이름이 나온다는 논란이 있으나, 위키백과는 이를 체계적·지속적 친일행위로 규정한 국가기관의 판단이나 학술적 합의는 없다고 덧붙입니다.
1909년 교남교육회·달성친목회에 가입했고 같은 해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대동청년당을 조직했습니다.
한국민주당 창당 때 총무로 선임되었고, 1948년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 제헌헌법 기초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39·1941년 집회 참석 보도에 따른 논란이 있으나 국가기관의 친일 규정은 없다는 설명이 함께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동청년당을 조직한 독립운동가이며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정치인입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