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호 미당, 『화사집』·『질마재 신화』 저자

| 생몰 | 1915 ~ 2000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달성 서씨 |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2000년 12월 24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교육자로, 본관은 달성이고 호는 미당(未堂)·궁발(窮髮)입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자랐습니다. 14세에 서울로 올라가 중앙보통학교를 다녔고, 1933년에는 개운사 대원암에서 박한영 스님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습니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귀촉도』(1946), 『시선』(1955),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이 있습니다. 토속적이고 불교적인 소재, 전라도 사투리를 살린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며, 시 「자화상」의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는 구절은 널리 인용됩니다. 「푸르른 날」은 시집 『동천』에 실렸고 가수 송창식이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렸습니다. 해방 뒤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문인협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에서 오래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전쟁을 찬양하며 조선인의 참전을 독려하는 글과 시를 발표하여, 2002년 친일 문학인 명단과 친일파 708인 명단,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등에 올랐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전두환 대통령을 기리는 시를 쓴 일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위키백과는 문학적 성취와 별개로 이러한 행적 때문에 역사적 평가에 논란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고향 고창에 미당시문학관이 있고 서울 관악구에 살던 집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부인 방옥숙과 같은 해인 2000년 사망했습니다. 이 항목은 공개된 기록을 사실 위주로 소개한 것입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등단했고 『화사집』(1941)으로 첫 시집을 냈습니다. 토속적·불교적 소재와 전라도 사투리를 살린 시어가 특징으로 평가됩니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와 한국문인협회 창립에 참여했고 서라벌예술대학·동국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미당시문학관이 고창에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창씨개명과 친일 작품이 확인되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1980년대 초에는 전두환을 기리는 시로 비판받았습니다. 위키백과는 문학적 업적과 별개로 역사적 평가가 논란이라고 정리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는 달성(達城)으로 소개합니다. 그가 쓴 창씨명 '達城靜雄'에도 달성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화사집』(1941), 『귀촉도』(1946),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