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폐위에 분개해 벼슬을 단념한 생육신의 한 사람, 자는 이수, 호는 문두, 시호 정숙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창녕 성씨 |
성담수(成聃壽, 생몰년 미상)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은일사로 생육신의 한 사람입니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이수(耳叟, 위키백과에는 眉叟로도 적음), 호는 문두(文斗), 시호는 정숙(靖肅)입니다. 성석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개, 아버지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성희(成熺)이며, 어머니는 호조판서 이견기의 딸입니다. 성승은 그의 당숙이고 사육신 성삼문은 6촌 형이며, 동생으로 성담년이 있습니다.
1450년(세종 32) 진사에 합격했으나, 1456년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될 때 아버지 성희가 친족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국문을 받고 김해에 안치되었습니다. 성희는 3년 뒤 풀려나 공주로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일로 성담수는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이 있는 파주의 문두리에 은거하며 시와 낚시로 지냈습니다. 세조가 참봉 등의 관직을 내렸으나 자신을 감시하려는 뜻으로 보고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시습, 이맹전, 원호, 조려, 남효온과 함께 사육신에 대비하여 생육신으로 불립니다. 1782년(정조 6)에 정조의 특명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함안의 서산서원에 김시습·원호·남효온 등과 함께 봉향되었으며, 창녕의 물계서원에서도 일문의 현인들과 함께 제향됩니다. 은거지는 자료마다 파주 문두리와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로 달리 적혀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동생 성담년은 성종 때 출사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는 조부 성개, 아버지 성희, 동생 성담년·성담명·성담령·성담중·성담로·성담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종 때 을사사화에 가담한 이기와 시인 이행이 그의 생질(누이의 아들)로 전하는데, 같은 집안에서도 절의와 정치의 길이 갈렸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창녕 대지면 모산리의 물계서원은 성송국·성삼문·성수침·성운·성제원·성혼 등 일문의 여러 인물과 함께 성담수를 기리는 서원으로 소개됩니다. 사육신 성삼문과 함께 한 집안에서 절의의 두 갈래가 나온 셈입니다.
묘소와 은거지는 자료마다 달라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경기도 파주 문두리 또는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로 전함).
아버지 성희의 가계로 이어지며 동생 성담년·성담명·성담령 등이 기록됩니다.
단종 폐위에 분개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남효온·성담수를 가리킵니다.
성삼문의 6촌 동생(재종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