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때 충청도·경기도 관찰사를 지내고 농상과 수리에 치적을 남긴 문신, 문숙공파 파조
| 생몰 | 1354 ~ 1420 |
| 시대 | 조선 초 |
| 본관 | 단양 우씨 |
우희열(禹希烈, 1354~1420)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입니다. 판밀직사사 우복생(증 문하시중)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삼사좌사 진천군 류지정의 맏딸입니다. 형은 정평공파의 파조 우인열이고 동생 우숭렬은 판종부시사를 지냈습니다. 단양 우씨 문숙공파의 파조로 받들어집니다. 조선 건국 이전의 행적은 자세히 전하지 않습니다.
태종 때 호조전서와 판원주목사를 거쳤으며, 1408년(태종 8) 민무구 사건에 연루되어 전옥서에 갇혔다가 석방되었습니다. 이듬해 글을 올려 제언(둑) 수축을 청했고, 1413년 충청도도체찰사로 임명되어 순제의 역사를 감독했습니다. 1415년 3월 다시 충청도도관찰사로 나갔는데, 7월 새 도관찰사로 임명된 황자후를 대신해 유임되었고, 12월에는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습니다. 1417년 판광주목사를 거쳐 이듬해 판청주목사에 이르렀고, 1419년(세종 원년) 병으로 사직했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임한 곳마다 농상과 수리 분야에서 치적이 있었다고 하며, 사후인 1444년(세종 26) 세종이 그를 평가했다고 전합니다. 부인은 충주병마절제사 최공철의 딸이고, 아들로 우경생·우경지·우경부·우경송을 두었으며, 우경지는 의흥현감을 지냈습니다. 며느리 가운데에는 의흥삼군부 도총제 심인봉의 딸이자 청성백 심덕부의 손녀인 청송 심씨가 있어, 조선 초 여러 문신·무신 가문과 혼인으로 이어진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08년의 민무구 사건은 태종의 처남 민무구가 처벌된 일로, 그와 같은 외척 관련 옥사에 연루되었다가 풀려난 뒤에도 관직을 이어 간 점이 눈에 띕니다. 순제는 충청도에 있던 제언으로 보이며, 그가 수리 공사를 직접 감독한 사실은 이 시기 지방관의 중요한 책무가 농사를 뒷받침하는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1415년 충청도도관찰사, 같은 해 경기도관찰사를 지냈고 광주·청주 목사도 역임했습니다. 형 우인열이 무장으로 이름을 날린 것과 달리 행정과 수리에서 성과를 낸 인물입니다.
1409년 제언 수축을 청하고 1413년 순제 공사를 감독했으며, 사후 1444년 세종이 그의 공을 평가했다고 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우경생·우경지·우경부·우경송을 두었고, 후손이 문숙공파를 이룹니다. 형은 정평공파 파조 우인열입니다.
조선 태종 때 충청도와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문신으로 문숙공파의 파조입니다.
제언 수축을 청하고 순제 공사를 감독하는 등 농상과 수리 분야에서 치적을 남겼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