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계변무와 복제 논의에 공이 있는 청백리, 호조판서를 지낸 문신 (호 청련, 시호 문청)
| 생몰 | 1520 ~ 157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이씨 |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 시호는 문청(文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관찰사 이숙함(李淑瑊)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세문(李世文), 아버지는 이국형(李國衡), 어머니는 임씨(林氏)라고 적습니다. 승문원 주서와 박사, 전한, 시강원 설서와 사서, 정언·사간, 병조좌랑, 이조정랑 등 청요직을 거쳐 선조 즉위 뒤 동부승지·대사간·병조참의·도승지·예조참의·홍문관 부제학·이조참판으로 올랐습니다.
1567년 원접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이했고, 1573년에는 변무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이후 형조판서와 평안도관찰사를 지내며 평안도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합니다. 인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복제를 어떻게 할지 논란이 일자 3년상을 주장했고 그대로 시행되었다고 하며, 종계변무의 공으로 사후인 1590년 광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습니다. 이 책봉과 함께 군호가 추봉되었는데, 대백과는 이칭을 연원군(延原君)으로 적으면서 본문에서는 연양군(延陽君)으로 추봉되었다고 하여 두 표기가 다릅니다.
그는 이조판서를 지냈고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역임했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습니다. 호조판서로 있던 1578년 휴가를 얻어 함양으로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고 하며 함흥의 문회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저서로 『청련집』이 있습니다. 2023년 탄생 500주년 학술대회를 보도한 기사는 그를 국론 통합에 힘쓴 청백리이자 학자, 경세가로 소개했습니다.
1573년 이후백은 변무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종계변무는 명나라 기록에 잘못 적힌 조선 왕실의 계통을 바로잡으려는 오랜 외교 과제였고, 그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고 합니다.
인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복제 문제가 생기자 그는 3년상을 주장했고 그대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호조판서 재직 중 함양으로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증조부가 관찰사 이숙함이며, 후손이 호남에서 이름난 가문을 이루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호는 청련, 시호는 문청으로, 조선 중기에 호조판서까지 오른 연안 이씨의 청백리 문신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에서도 두 표기가 함께 나오므로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병기합니다.
『청련집』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