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성리학자, 대사헌·경주부윤, 윤휴의 아버지
| 생몰 | 1563년 ~ 1619년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남원 윤씨 |
윤효전(尹孝全, 1563~1619)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초명은 효선(孝先), 자는 영초 또는 이영, 호는 기천(沂川)이며 본관은 남원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색은 북인(소북)이었고 윤휴의 아버지입니다. 서경덕의 손제자로 민순과 정구에게 배웠습니다. 증조부는 윤자관,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윤호, 아버지는 33세에 일찍 세상을 떠난 윤희손입니다.
음서로 관직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싸운 공으로 1605년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으며, 같은 해 증광문과에 급제했습니다. 1603년에는 임진왜란 때 불탄 명종실록의 재편찬에 참여했고, 홍문관과 이조좌랑 등을 거쳐 1606년 황해도 암행어사로 나갔습니다. 광해군 즉위 뒤에는 임해군의 옥사를 맡아 1613년 익사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대사헌과 지의금부사를 지냈으며 1615년 대원군(뒤에 대은군)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1617년 대사헌으로 대비의 유폐를 반대하다 경주부윤으로 밀려났고 1619년 2월 20일 임지에서 병사했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익사공신 작위가 추탈되고 인목대비 폐모론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으나, 아들 윤휴의 신원 상소로 복관되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그는 서경덕을 존숭해 《화담집》 간행을 주도했습니다.
첫 부인은 파평 윤씨 윤담휴의 딸이고, 첫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학자 김덕민의 딸 경주 김씨를 맞아 늦은 나이에 아들 윤휴를 얻었습니다. 서자 윤영은 이원익의 서녀와 혼인했고, 위키백과는 윤효전의 첩 가운데 이순신의 서녀가 있었다고 적습니다. 이원익·허목 등과의 사돈 관계는 뒷날 윤휴가 남인과 가까워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윤효전은 처음에는 '영명(令名)'이 있었다는 평을 받았으나, 서인 쪽에서는 임해군의 옥사에 관여하고 공신에 오른 점을 두고 '끝내는 소인이 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신독재 김집이 그런 말을 했고 송시열의 상소에도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위키백과는 그가 인목대비 폐모론에는 적극 관여하지 않았다는 아들의 주장을 함께 전합니다.
경기도 여주 금사면에 안장되었으나 2000년대에 대전 선영으로 이장되었습니다(위키백과).
아들 윤휴, 서자 윤영(1611~1691).
남인의 중심 학자 윤휴의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