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관 尹子寬

문신·성리학자, 조광조의 문인, 윤휴의 고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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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90년 ~ 1550년
시대조선 중기
본관남원 윤씨

생애 약력

윤자관(尹子寬, 1490~1550)은 윤관(尹寬)으로도 불리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입니다. 자는 율옹, 호는 삼휴자(三休子)이며 본관은 남원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단련사를 지낸 윤취의 아들이고,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김종직-김굉필, 정여창-조광조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었습니다. 후대의 남인 학자 윤휴의 고조부입니다.

기준·백인걸·신잠·안정 등 신진 사류와 교유하며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고, 중종 초 스승 조광조 일파가 집권했을 때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1519년 어버이 상을 당해 사직하고 3년상을 치르던 중 기묘사화가 일어나 화를 면했으나, 그 뒤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두문불출하다 1522년 음보로 출사했습니다.

어머니를 봉양하려고 한직을 자청해 소격서 참봉이 되었고 이어 충익부 도사와 군자감 판관을 지냈습니다. 평시서 직장과 종부시 주부를 거쳐 아산 현감이 되었고, 1541년 안동 판관, 1548년(명종 3) 충익부 도사와 군자감 판관을 지냈습니다. 모친상 중에 병을 얻어 숨졌습니다. 둘째 아들 윤호는 이조참판에 이르렀고, 손자 윤희손은 뒷날 아들 윤효전의 현달로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가족 관계

위키백과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윤광은, 아버지는 윤취이며 부인은 개성 최씨(최명창의 딸)입니다. 장녀는 김귀영에게 시집갔고, 손녀가 허개에게 시집갔으며, 사돈으로 이순신과 이원익이 올라 있습니다. 사돈 이순신과 이원익은 뒷날 손자 윤효전 대의 혼맥과 겹치는 이름입니다.

학통의 의미

윤자관이 김종직에서 김굉필·정여창을 거쳐 조광조로 이어지는 사림의 학통을 이었다는 서술은, 먼 후손 윤휴가 남인 학자로 이름을 떨친 집안의 학문적 바탕을 설명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다만 이는 위키백과의 정리이며 문집 등 일차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묘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장남 윤기(일찍 사망), 차남 윤호, 손자 윤희손으로 이어집니다.

윤자관 자주 묻는 질문

윤자관은 윤휴와 어떤 관계입니까?

윤휴의 고조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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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남인의 중심 성리학자, 예송 논쟁의 논객, 이조판서·우찬성윤집문신, 삼학사의 한 사람(병자호란 척화파)윤섬문신, 명나라 사행(종계변무), 상주 전투에서 전사윤정현문신, 이조·예조·형조·병조판서, 김정희의 제자윤계문신·의병장, 남양부사, 병자호란 때 순절윤효전문신·성리학자, 대사헌·경주부윤, 윤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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