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충청도관찰사, 인조실록 열람 사건

| 생몰 | 1640년 ~ 1680년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남원 윤씨 |
윤의제(尹義濟, 1640~1680)는 남인의 중심 학자 윤휴의 아들로, 자는 정백, 본관은 남원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음서로 출사해 통덕랑 이조좌랑으로 있던 1675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사관·정언·지평·교리 등 삼사의 요직을 거치며 남인의 저격수로 서인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1677년 예문관 검열로 적상산사고에 포쇄(책의 습기를 말리는 일)하러 갔다가 《인조실록》을 우연히 열람했고, 효종이 뇌물을 써서 세자가 되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았다고 아버지 윤휴에게 전했습니다. 윤휴는 이를 밝히려 했으나 남인 영수들의 만류로 그만두었습니다. 윤의제는 1680년 충청도관찰사에 올랐으나 그해 경신대출척으로 아버지가 사사되자 서인이 장악한 삼사의 탄핵을 받아 극변에 유배되었고 배소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동생 윤하제가 인조실록의 해당 기사를 가려 보자는 상소를 추진했고 열람한 실록에서 20여 자가 오려진 흔적이 확인되었으나 규명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1691년 신원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삭탈되었고 1795년(정조 때) 복권되었습니다. 아들이 없어 동생 윤은제의 아들 윤상정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 사건은 실록을 사관이 함부로 열람하고 내용을 발설한 일을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효종과 관련된 기사의 진위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가 얽힌 정쟁이었습니다. 위키백과는 1689년 조사에서 인조실록의 해당 부분이 오려진 채 발견되었으나 누가 그랬는지 밝히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그 진상은 이번 조사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없어 동생 윤은제의 아들 윤상정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남인의 중심 학자 윤휴의 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