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호남의 성리학자, 호 은봉, 시호 문강

| 생몰 | 1573 ~ 1654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죽산 안씨 |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으로, 본관은 죽산이고 초명은 삼문(三文), 자는 사언(士彦), 호는 은봉(隱峯)·우산(牛山)입니다. 1573년 전라남도 보성 오야리(지금의 보성읍 우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호 '은봉'은 정몽주(포은)와 조헌(중봉)을 존숭해 두 호에서 한 글자씩 땄다고 전합니다. 고조부는 현감을 지낸 안범, 조부는 목사 안축으로 김인후·임억령과 함께 '호남삼고'로 불렸습니다. 생부 안중관의 형 안중돈이 과거 시험 중 급사해 양자가 되었고, 부인은 경주 정씨입니다.
11세에 이황의 제자 박광전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19세에 성혼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박광전·임계영 의병의 막하에서 참모로 활동했고, 1596년 제2차 진주성 전투를 기록한 『진주서사』를 지었습니다. 조헌의 『항의신편』(1613)과 「동환봉사」(1622)를 엮어 간행했으며, 이귀가 감동해 인조에게 반포를 건의할 만큼 호응을 얻었습니다. 광해군 조정의 출사 요청은 거절했습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격문을 돌려 호남 의병장으로 출병했고, 1636년 병자호란에서는 수백 명을 이끌고 여산까지 진군했습니다. 척화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말년에는 화순 능주의 은봉정사에서 제자를 길렀습니다. 효종 때 공조좌랑·사헌부장령·공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654년 11월 13일 82세로 은봉정사에서 별세했습니다. 사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1821년 문강(文康) 시호를 받았습니다. 『진주서사』·『호남의록』 등 임진왜란과 당쟁에 관한 저술은 지금도 의병사와 붕당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쓰입니다. 서인 계열로 분류되며 붕당을 깨뜨리자는 뜻을 평생의 소임으로 삼았다는 칭송이 있는 한편, 실제로는 서인을 두둔했다는 비판도 함께 소개됩니다.
임진왜란 관련으로 『진주서사』·『임정충절사적』·『호남의록』 등을, 사림 정신을 위해 『기묘유적』·『항의신편』을, 당쟁 관련으로 『혼정편록』·「기축기사」를 남겼습니다. 문집은 1773년 『우산집』, 1864년 『은봉전서』(본집 38권, 부록 2권)로 간행되었고 1969년 속집과 부록을 보완해 총 44권 21책으로 완편되었습니다. 사진은 1864년 간행 문집 『은봉전서』입니다.

보성 우산리 종가의 은봉 사당은 불천위 사당으로 1879년 종손 안영환이 건립했고 1999년 중건되었으며, 매년 음력 11월 13일 기제를 지냅니다. 대계서원은 1657년 건립되어 1704년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 훼철되었고 2012년 복설되었습니다. 도원서원(화순 동복)에는 최산두·임억령·정구와 함께 병향되었고, 도산사(화순 능주, 1656년 건립)는 1868년 훼철된 뒤 복설되지 않고 유허비만 남았습니다.

1821년(순조 21) 문강(文康)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안방준의 시호 교지입니다(증직 연도와 직함은 위키백과 본문과 인포박스에 차이가 있어 이조참판 또는 이조판서로 달리 적힙니다).

보성 우산리 종가의 사당(우산재사)입니다. 1879년 종손 안영환이 사재를 들여 세웠고 1999년 후손의 협력으로 중건했습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복교리 일대에 학산재사가 있고 '갈학등' 묘소가 소개되지만, 정확한 위치와 조성 내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맏아들 안후지(호 송음, 좌승지 증직)의 아들 안전(진사, 송화현감)·안음·안회 등이 소개됩니다. 보성 우산리 은봉 종가는 안영환, 안규삼, 안병문, 안재호 등으로 이어지는 종손이 지켜 왔고, 불천위 사당에서 음력 11월 13일 기제를 올립니다.
위키백과는 본관을 죽산 안씨로 적습니다. 죽산 안씨 가운데 신(新) 죽산 안씨는 순흥 안씨에서 갈라졌다는 전승이 있으나, 본관은 죽산으로 표기합니다.
임진왜란(1592) 때 의병 막하에서 활동했고,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에는 직접 의병을 이끌고 출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