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본명 안필승. 《발(髮)》로 등단, 해방 후 조선문학동맹 소설분과위원장, 월북. 안국선의 아들

| 생몰 | 1909 |
| 시대 | 일제강점기~해방 후 |
| 본관 | 죽산 안씨 |
안회남(安懷南, 1909~?)은 소설가로 본관은 죽산이며 본명은 안필승(安必承)입니다. 1909년 11월 15일 대한제국 한성부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1878~1926)입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안국선의 외아들로 소개하며, 증조부 안광묵, 친조부 안필수, 양조부 안경수가 있다고 적습니다. 문학평론가 안막은 6촌 동생입니다. 월북 이후의 행적이 분명치 않아 몰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발(髮)〉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1930년대에는 구인회 동인들과 활동했고, 초기에는 심리 묘사 중심의 사소설을 주로 썼습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일본에 약 1년간 징용되었다가 돌아왔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징용 체험이 친일 활동이었는지는 위키백과 본문이 다루지 않으며, 이 글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광복 후에는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거쳐 조선문학동맹 결성에 참여해 소설분과위원장을 맡았습니다. 1947년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지며, 1948년에는 미군정 치하 농민의 궁핍을 고발하는 중편 《농민의 비애》를 발표했습니다(월북 이후로 추정됩니다). 한국전쟁 때에는 종군작가단으로 서울에 왔다가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과 함께 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조선로동당 당무위원을 지냈다고도 하나 시기는 확인되지 않으며, 1960년대 숙청되었다는 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1954년경까지의 활동만 확인됩니다. 초기의 심리 소설에서 해방 후 현실 비판 소설로 방향이 바뀐 작가로 설명되며, 같은 죽산 안씨 문중의 작가로 아버지 안국선과 함께 거론됩니다.
초기에는 심리 묘사 중심의 사소설을 주로 썼고, 태평양전쟁기 징용 체험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했으며, 해방 후에는 《농민의 비애》로 농민의 궁핍을 고발했습니다.
1947년경 월북했고 한국전쟁 때 종군작가단으로 서울에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이후 행적은 1954년경까지만 확인되어 몰년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안필승(安必承)입니다. 뒤에 안회남(安懷南)으로 개명했습니다.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