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때 지밀직사사·도지휘사를 지낸 문신, 올곧은 처신으로 '철고(쇠떡)'라 불림
| 생몰 | 1298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죽산 안씨 |
안전(安戩, ?~1298)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죽산입니다. 구(舊) 죽산 안씨의 한 계통에서 안영의(安令儀)를 기세조로 할 때 그의 증손으로 소개됩니다. 생년과 부모·배우자·자녀에 관한 기록은 위키백과에 없고, 전기는 『고려사』의 「안전전」에 기대고 있습니다. 1249년(고종 36)에 몽골에 파견된 시랑 안전은 동명이인으로 이 인물과 같지 않다고 정리됩니다.
원종 때 류경(柳璥)의 문하에서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시어사를 지냈고, 충렬왕 초에는 전라도안찰사가 되었습니다. 이때 응방(왕실 매 사육 기관)의 오숙부 등이 세력을 믿고 방자하게 구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인사를 하지 않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이들이 새매가 죽은 일을 안전과 신좌선의 탓으로 무고했습니다. 왕이 두 사람을 해도로 유배 보내려 했으나 승선 박항이 적극 반대해 파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정방에 들어가 대부소윤으로서 비칙치가 되었고, 1285년(충렬왕 11)에는 판비서사로 국자시 시험관을 맡아 윤신걸 등 55명을 뽑았습니다. 이듬해 좌승지로 있을 때 왕이 환관을 참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반대했고, 왕이 억지로 6품직을 주라고 하자 사직 의사를 거듭 밝히다가 결국 왕의 말을 자신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해 임명 명단에서 이름을 지웠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1287년 부지밀직사사로 승진하고 충청도안무사로 파견되었으며, 1288년 지밀직사사로 올라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290년 합단적이 침입하자 경상도도지휘사와 충청도도지휘사를, 1291년 서북면도지휘사를 지냈고 1298년(충렬왕 24)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사를 맡고도 어느 편에도 붙지 않고 늘 바르게 행동해 당시 사람들이 '철고(鐵餻, 쇠떡)'라 불렀다고 합니다.
전라도안찰사 시절 응방의 세도를 인정하지 않다가 무고를 당했으나, 승선 박항이 반대해 파직으로 끝났다고 『고려사』가 전합니다.
철고(鐵餻)는 '쇠떡'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관리의 선발과 임명을 맡으면서도 어느 편에도 붙지 않고 바르게 처신한 데서 붙은 별칭입니다.
후손에 관한 기록은 위키백과에 없습니다. 구 죽산 안씨 안영의계(1805년 족보 간행)와 연결되어 소개됩니다.
구 죽산 안씨 가운데 안영의를 기세조로 하는 안영의계로 소개되며, 안영의의 증손입니다.
아닙니다. 안방준 맏아들 안후지의 아들 안전(安峑, 진사·송화현감)은 조선 시대의 별개의 사람이며, 이 인물은 1298년 사망한 고려 문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