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홍 安圭洪

호남에서 의병을 이끈 의병장,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2001년 5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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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79 ~ 1910
시대대한제국~일제강점기
본관죽산 안씨

생애 약력

안규홍(安圭洪, 1879~1910)은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으로 본관은 죽산입니다. 위키백과는 1879년 4월 10일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고 적습니다. 어린 시절 머슴살이를 했다고 전해지며, 이런 출신에서 의병장으로 올라선 점이 그의 이야기가 널리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사망 연도는 본문에는 1910년으로, 분류 항목에는 1911년으로 적혀 자료가 어긋나므로 이 글은 1910년으로 적었습니다.

의병에 가담한 뒤 처음에는 강용언 부대에 들어갔습니다. 강용언이 폭정을 일삼자 이를 견디지 못한 부하 의병들이 그를 살해했고, 그 뒤 1908년 4월 안규홍이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는 해산 군인들을 받아들여 부대의 세력을 키웠고, 일본군과 26차례 싸워 승리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인과 부패한 관리, 악질 부호의 재물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점도 그의 부대의 특징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호남 의병을 소탕하려고 벌인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부대가 해산되었습니다. 부대 해산 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10년 순국했다고 합니다. 체포와 순국의 구체적인 장소와 경위, 26차례 전투의 개별 날짜와 장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2001년 5월에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같은 죽산 안씨 가문에서 의병과 학문으로 이름을 남긴 안방준(임진·정묘·병자 3란의 의병)과 비교하면, 안규홍은 근대의 항일 의병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됩니다.

의병장 추대까지

강용언 부대에서 활동하던 중 강용언이 폭정을 일삼다 부하들에게 살해되자, 1908년 4월 안규홍이 새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서훈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01년 5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후손에 관한 자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규홍 자주 묻는 질문

안규홍은 독립유공자인가요?

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고 2001년 5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그의 부대는 무엇을 했나요?

일본군과 26차례 싸워 이겼다고 전해지며, 일본인과 부패 관리 등의 재물을 빼앗아 농민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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