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으로 김구를 보좌한 독립운동가(호 일파)
| 생몰 | 1898 ~ 1962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영월 엄씨 |
엄항섭(1898~1962)은 경기도 여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영월, 호는 일파(一波), 가명은 엄일파입니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에 가담한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신규식을 찾아가 동제사에 들어갔고, 항저우 지강대학을 졸업했다고 전합니다. 디트뉴스24는 그를 영월 엄씨 28세손으로 소개합니다.
프랑스 조계 공무국에 근무하며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했고, 이후 김구를 만나 임시정부에 투신해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었습니다. 1930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선전부장이 되었습니다. 글솜씨가 뛰어나 김구 명의의 성명문과 호소문 대부분을 썼고 김구의 글을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 환국 제1진으로 귀국해 김구를 보좌하며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김구의 남북협상을 지지했습니다. 1950년 9월 6·25 중 납북되었습니다. 1958년 북한에서 '엄항섭 사건'에 연루되었고, 1962년 7월 30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집니다. 대한민국은 건국훈장을 추서했으나 위키백과는 1988년 대한민국장과 1989년 독립장으로 연도·등급이 다르게 적고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위키백과는 입북 경위에 논란이 있다고 서술합니다. 본인의 뜻에 반한 납북으로 추정되는 한편, 김구가 세상을 떠난 뒤 정치적 기반을 잃고 이승만과 정적이었던 점 때문에 자진 월북했다는 소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자료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솜씨가 뛰어나 임시정부의 대외 문서를 도맡았고, 김구의 생활을 돌보는 등 임시정부와 김구에게 헌신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북한은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을 추서했다고 위키백과는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유해가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어 있다고만 적으며 구체적 위치는 없습니다.
영월입니다. 영월 엄씨 28세손으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