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문과 갑과로 급제해 홍문관 전한까지 오른 문신(호 십성당)
| 생몰 | 1508 ~ 154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영월 엄씨 |
엄흔(嚴昕, 1508~1543)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월, 자는 계소(啓昭), 호는 십성당(十省堂)입니다. 1525년 생원이 되었고 1528년 21세에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홍문관 정자가 되었으며, 호당(사가독서)에 뽑혔습니다. 이후 홍문관 저작, 1530년 부수찬, 1531년 수찬을 거쳐 이조 좌랑을 지냈고, 1541년 홍문관 전한, 1542년 승문원 참교가 되었습니다.
언로를 열고 언관에 대한 탄압을 멈추도록 건의했으며, 1541년에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간이 서경을 한 뒤 다시 서경을 내는 일을 비판했습니다. 대간이 경솔히 대우받고 대관이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는 상황을 지적한 것입니다. 1542년 승문원 참교 재직 중 몹쓸 병에 걸려 이듬해 세상을 떠났고, 사림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선조 엄유온의 6세손이며, 증조부 엄송수는 성종의 후궁 귀인 엄씨의 숙부였습니다. 부인은 판서 박호의 손녀인 무안 박씨입니다. 저서로 『십성당집』이 있으나 내용은 전하는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복야공파에 '십성당공계'가 있어 호와 같은 이름이지만, 둘이 같은 계통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로를 열고 언관에 대한 탄압을 멈춰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1541년 홍문관 전한으로서는 법 제정 과정에서 서경이 되풀이되는 일을 비판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젊은 문신이 간쟁 기능을 지키려 한 사례로 읽힙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성품이 매우 영리하고 문장 실력이 날로 늘었으며, 그 때문에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망 당시 사림이 애석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어 젊은 나이의 이른 죽음이 아쉬움을 남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열 번 살피는 집'으로 읽을 수 있으나 호의 뜻을 설명하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