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 양정·진명·숙명 설립에 관여한 영월 엄씨
| 생몰 | 1854 ~ 1911 |
| 시대 | 대한제국 |
| 본관 | 영월 엄씨 |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 은(垠)의 어머니입니다. 위키백과 본문에는 본관이 따로 없고 아버지 엄진삼(1812~1879)의 항목에 영월 엄씨로 나오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입니다. 엄진삼은 평민으로 벼슬을 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1861년 8세에 궁녀로 입궁해 경복궁 나인이 되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고종을 보필해 지밀상궁이 되었으며 명성황후의 시위상궁도 지냈습니다. 1885년 고종의 승은을 입었다가 명성황후에게 발각되어 궐 밖으로 쫓겨났으나 윤용선의 상소로 서인이 되는 것을 면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관파천 때는 고종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냈습니다.
1897년 10월 20일 아들 은(영친왕)을 낳았고 22일 귀인에 봉해졌습니다. 이후 순빈(1900), 순비(1901), 황귀비(1903)로 올랐고, 황후 책봉이 추진되었으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1907년 영친왕이 황태자로 정해졌습니다. 1905년 양정의숙, 1906년 진명여학교와 명신여학교 설립에 관여하고 후원했으며, 이들 학교는 지금의 양정고, 진명여고, 숙명여대의 전신으로 소개됩니다. 1911년 7월 20일 장티푸스로 덕수궁 함녕전에서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순헌, 능호는 영휘원입니다.
그는 1905년 양정의숙, 1906년 진명여학교와 명신여학교의 설립에 관여하고 후원했으며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도 후원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이들 학교가 각각 오늘날의 양정고, 진명여고, 숙명여대의 전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장학금 지원과 자선 활동이 강조되는 반면, 출신이 평민이라는 이유로 황후 책봉에 반대한 세력이 있었다는 서술도 함께 있습니다.
디트뉴스24는 영월 엄씨의 왕실 인연으로 성종의 후궁 귀인 엄씨와 함께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를 꼽으며, 임영대군의 자부 혜인 엄씨도 영월 엄씨라고 소개합니다. 본관은 아버지 엄진삼의 항목에서 확인되는 것이어서 족보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능호는 영휘원(永徽園)으로, 처음 양주 천수산에 명성황후 초장지 오른쪽에 안장되었다고 하며, 현재 영휘원은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에 있습니다. 위패는 1929년 칠궁으로 옮겨졌습니다.
아들 영친왕 은(1897~)이 있으며 1907년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같은 인물입니다. 황귀비로 오르기 전 귀비 등으로 불린 엄씨를 흔히 엄귀비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