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엄씨 貴人 嚴氏

성종의 후궁(귀인), 갑자사화 때 연산군에게 살해된 영월 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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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04
시대조선 전기
본관영월 엄씨

생애 약력

귀인 엄씨(?~1504)는 조선 성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영월입니다. 아버지는 엄산수(사직, 사후 이조참의 추증)이고, 증조부는 개국공신 엄유온입니다. 출생 연도는 전하지 않으며 위키백과는 1458년 이후 1462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입궁 시기는 기록이 없고, 1477년 3월 20일 기록에 처음 나오며 그 이전에 이미 후궁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처음 정3품 소용이었다가 종2품 숙의를 거쳐 종1품 귀인에 봉해졌고, 1481년 3월 11일 태어난 공신옹주 1녀를 두었습니다.

1504년 음력 3월 20일 밤, 연산군은 귀인 정씨와 함께 그를 창경궁 뒤뜰에서 결박해 몽둥이로 쳐 죽였고, 시신을 훼손하여 아무 데나 뿌리게 했다고 합니다. 친정 가족들은 참형되었고 공신옹주는 서인이 되어 유배되었으며, 1506년에는 오라비 엄회와 엄계도 처형되었습니다. 중종반정 뒤 가족과 공신옹주는 복위되었습니다.

위키백과는 그를 폐비 윤씨를 모함해 폐출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후궁으로 '알려져 있다'고 서술합니다. 이 서술은 연산군 때의 정치 기록에 기대고 있어 평가가 갈릴 수 있으므로 그대로 단정하지 않고 소개만 합니다.

가문이 입은 화

1504년의 사건으로 친정 가족들이 참형되었고, 딸 공신옹주는 폐서인되어 유배되었습니다. 1506년에는 오라비 엄회와 엄계가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한 후궁의 죽음이 가문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진 연산군 때의 정치적 격변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복위와 공신옹주의 절의

중종반정 뒤 가족과 공신옹주는 복위되었습니다. 공신옹주는 유배 중 남편의 신주를 지킨 절의로 곡식을 하사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후손

딸 공신옹주(1481~)가 있었으며, 사건 뒤 폐서인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뒤 복위되었습니다.

귀인 엄씨 자주 묻는 질문

귀인 엄씨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요?

1504년 음력 3월 20일 밤 연산군의 명으로 창경궁 후원에서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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