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향리 출신으로 부지밀직사사에 오른 고려 후기 문신(시호 충렬)
| 생몰 | 1298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영월 엄씨 |
엄수안(?~1298)은 고려 원종·충렬왕 때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영월, 시호는 충렬(忠烈)입니다. 영월군의 향리 집안 출신으로 담력이 있었다고 전하며, 향리 집안의 아들 한 명에게 벼슬을 허락하는 제도에 따라 중방서리가 되었고 원종 때 과거에 합격해 도병마녹사가 되었습니다. 최종 관직은 부지밀직사사입니다.
무신정권 말기의 혼란 속에서 여러 일에 관여했습니다. 1268년 김준 제거 뒤 몽골 사신 살해 모의가 나오자 사신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고, 같은 해 김주가 군사를 모으자 궁궐 문을 두드려 알려 체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1270년에는 임유무가 보낸 야별초를 금주에서 가두도록 건의하고 민심을 안정시켰으며, 1271년 밀성 반란 진압에도 가담했습니다.
1285년 남경부사로 있을 때는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충렬왕에게 삼각산 문수굴 행차를 권했고, 왕은 그의 능력을 인정해 3품 계를 주었습니다. 말년에 치사하여 부지밀직사사로 머물다 1298년 9월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로 엄찬·엄정·엄신이 있으며 엄찬은 원나라 조정에 입시했다고 전합니다.
원종 때에는 남경에서 왕의 행차에 필요한 물자를 잘 공급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충렬왕 때에는 백성을 가혹하게 대했다는 비판과 사치스러운 행사·길 닦기로 논란을 빚었지만, 지방관으로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 인물에게 상반된 평가가 함께 남아 있는 사례입니다.
영월 엄씨에서는 고려 때 엄수안이 부지밀직사사에, 엄공근이 판전의시사와 보문각제학에 올랐다고 소개됩니다. 영월 향리 집안에서 중앙 관직에 오른 사례로, 가문이 지방 토착 세력에서 출발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 읽힙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엄찬(원나라 조정에 입시), 엄정, 엄신이 전합니다.
부지밀직사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