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2차 침입 때 화의를 이끌고 억류되어 끝내 굴복하지 않고 순국한 고려의 무신, 진주 하씨 시랑공파의 시조

| 생몰 | 미상 ~ 1011 |
| 시대 | 고려 전기 |
| 본관 | 진주 하씨 |
하공진(河拱辰, ?~1011)은 고려 현종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진주입니다. 진주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며, 진주 하씨 시랑공파의 시조로 모셔집니다. 994년 압강도구당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목종 때에는 중랑장으로 왕을 호위했다고 전합니다.
1010년 거란이 대군을 이끌고 두 번째로 침입해 개경이 위태로워지자 현종은 남쪽으로 피신했습니다.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거란 진영에 들어가 강화를 교섭했고, 현종이 직접 거란에 들어가 조회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자신을 볼모로 내세워 거란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거란에 억류되어 거란 황제 성종에게 재능을 인정받았고 벼슬을 권유받았으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고려로 돌아오려고 좋은 말을 사서 길목에 두는 등 여러 번 탈출을 꾀하다가 발각되었고, 1011년 12월 끝내 굴복하지 않은 채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사후 문하시랑평장사에 추증되었다고 전하며, 1052년(문종 6) 상서공부시랑에 추증되었다는 기록도 있어 자료마다 추증 관직이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하공진은 진주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며, 994년 압강도구당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목종 때에는 중랑장으로 왕의 호위를 맡았고, 1009년 강조의 정변 때 이름이 보인다는 서술도 있으나 자료에 따라 설명이 다릅니다. 이후 문관직인 상서좌사낭중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1010년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이 남쪽으로 피하자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교섭에 나섰습니다. 현종이 직접 거란에 가서 조회하겠다는 약속을 전하고 자신이 볼모가 되어 거란군이 물러나게 했다고 전합니다. 거란은 철수하는 길에 강조를 처형했다고 기록됩니다.
거란에서 그는 성종에게 인품과 외교 수완을 인정받아 벼슬을 권유받았으나 응하지 않았습니다. 연경의 여인과 혼인했다는 서술이 있으나 감시가 엄했고, 말을 사서 길목에 배치하는 등 탈출을 거듭 꾀하다 1011년 12월 발각되어 끝내 굴복하지 않고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조정은 아들 하칙충에게 관작을 내렸고, 1052년 문종 때 영정을 공신각에 모시게 했다고 합니다. 후손은 약 300년간 혜택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진주성 안의 경절사에 모셔지며, 2007년 파주 고려 통일대전에 배향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후손에 하륜이 있습니다.
거란 땅에서 순국하여 묘소는 전하지 않습니다. 진주성 안의 경절사에 모셔지고 사당 앞에 사적비가 서 있습니다.
아들 하칙충이 고려 조정에서 관작을 받았다고 전하며, 후손에 하륜과 하경복 등이 이어진다고 소개됩니다.
고려 현종 때 거란 2차 침입의 강화를 이끌고 억류되어 순국한 무신으로, 진주 하씨 시랑공파의 시조입니다.
진주성 안의 경절사에 모셔지고 사적비가 서 있습니다.
문하시랑평장사로 추증되었다고 전하며, 1052년 상서공부시랑에 추증되었다는 기록도 있어 자료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