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종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첫 족보 경태보를 엮은 문신 (호 경재, 시호 문효)

| 생몰 | 1376 ~ 1453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진주 하씨 |
하연(河演, 1376~1453)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입니다. 자는 연량, 호는 경재 또는 신희옹, 시호는 문효입니다. 아버지는 하자종, 조부는 하윤원이며, 1396년 식년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세종 즉위 뒤 지신사가 되었고 1420년 예조참판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423년 대사헌으로 불교 종파 통합을 주장했으며, 1425년부터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경상도지리지』를 편찬했다고 전합니다. 대제학을 거쳐 판서·찬성·우의정·좌의정을 지냈고, 1449년 황희의 뒤를 이어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문종이 병약했던 1451년 2~7월 섭정을 맡아 정국을 안정시켰다고 평가되며, 이것이 단종의 왕위 계승에 기여했다고 봅니다. 같은 해 대자암 중수 반대 상소 뒤 물러나 1453년 7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451년 그가 엮은 첫 족보 『경태보』의 서문에서 사직공 하진을 시조로 삼은 사정을 밝혔습니다.
1396년 문과에 급제한 하연은 세종 즉위 후 지신사가 되었습니다. 1420년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1423년 대사헌으로 불교 종파 통합과 사원 재산의 국가 환수를 주장했습니다.
1425년부터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경상도지리지』를 편찬했다고 전합니다. 『진양연고』, 『경상도영주제명기』도 대표 저서로 꼽힙니다.
1449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임기는 자료마다 시작일이 달리 적혀 있습니다. 문종이 병약하던 1451년에는 섭정을 맡아 단종 계승에 기여했다고 평가됩니다. 같은 해 상소 뒤 물러나 145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1451년 첫 족보 『경태보』를 엮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서문만 전합니다. 전북 무주의 백산서원에는 그와 정경부인 성산 이씨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하자종입니다.
인천 소래산 일대에 묻혔다고 하며, 시흥시 향토유적 제3호 '하연 선생 묘'가 있습니다. 전북 무주의 백산서원에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하윤원의 손자이며 하자종의 아들입니다. 아들로 하효명, 하제명, 하우명이 전합니다. 같은 사직공파에 하위지가 있습니다.
세종·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호는 경재, 시호는 문효입니다.
1451년 하연이 엮은 진양 하씨 첫 족보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서문만 전합니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백산서원에 모셔져 있다고 소개됩니다.